용문사 입구의 놀이공원 용문산랜드를 지나 도보로 15분 정도 오솔길을 오르면, 우뚝 선 나무 한 그루가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이 딱 벌어지게 한다.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크기에 어리둥절한지, 가만히 지켜보던 할머니 한 분이 “이건 나무도 아니여!”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바로 이 나무가 그 유명한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이다. 신라의 마지막 세자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 의상 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도 한다. 수령은 약 1,100여 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41m에 둘레가 11m를 넘어 동양에서 유실수로는 가장 큰 은행나무이다.
은행나무를 뒤로 하고 ‘자비무적(慈悲無敵)’이라고 새겨진 돌판 옆으로 계단을 오르면 용문산 자락에 아담하게 자리한 용문사(주지 의정 스님)가 한눈에 들어온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 대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하며, 일설에는 경순왕(927~935 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하였다고도 전하는 천년고찰이다. ‘양평군지’에 따르면 창건 당시 당우(堂宇) 304칸에 300여 명의 스님이 머물러 대가람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1907년 의병 봉기 때 일본군에 의해 불태워지고, 6·25전쟁 중 모든 전각이 전소되는 등 수많은 전란과 화재를 겪은 탓에 천년의 더께를 느끼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그 험난했던 전화(戰火) 속에서도 은행나무와 관음전의 금동관음보살좌상만이 영험하게 내려오고 있어 용문사의 역사를 밝히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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