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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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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원효성사 3

 서당화랑

 그래서 서당은 늙은 할아버지인 잉피 공의 손에 의해 자랐다.

할아버지는 높은 벼슬을 지낸 귀족이었으므로 원근 주민들의 존경을 받았고 서당도 자연히 고생 같은 것은 모르고 자랐으며 아버지가 계실적부터 할아버지에게 글을 배우고 예의범절을 익혔다.

 서당이  열한 살이 되자 잉피 공은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손자를 공의 친구인 문노에게 보내어 손자의 장래를 부탁했다.

 문노는 잉피 공과 함께 고래로 내려오는 풍류도에 몸을 담은 큰스승이었다.

 풍류도는 단군성조의 홍익인간 사상을 계승하여 더욱 발전시킨 우리나라 고유의 도로서, 나라의 방패가 되는 장군이나 백성을 다스리는 기둥감들은 모두 이 풍류도에서 배출되었다.

 서당의 할아버지 잉피 공은 풍류도의 지도자로 있다가 나라의 벼슬을 받아 하산하였지만 문노 스승은 종신토록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후진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일관하였다.

 문노 스승의 이름이 가리키듯이 그는 천하에 으뜸가는 대문장가요, 검과 활을 잘 쓰는 대무인 이었다.

 당시 신라에는 문노 스승과 같은 위대한 인물이 여럿 있어서 태백산 두류산 팔공산 등 이른바 신라의 오악에서 도장을 열고 젊은 청년과 씩씩한 소년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서당의 스승 문노 스승에게서 배출된 인물로는 김유신 김춘추 비녕자 등이 있다.

 이들 문인들은 모두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기둥들이거니와 서당도 열한살에 문노 스승에게 가서 만 7년을 배우고 익혔으니 학문이나 무술에 있어 결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실력자가 되었다.

 풍류도의 도장에서 배운 청소년 중에 스승의 인가를 받은 수제자는 화랑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일반 평제자 즉 낭도를 가르치는 중간 지도자를 곧 화랑이라 일컫는 것이다.

 서당은 재작년에 화랑이 되어 수백 명 낭도들의 우두머리로 활약하던 중 지난해 가을에서 금년 초봄에 이르기까지 근 반 년간이나 백제와의 접경인 무산 동잠성 등의 큰 싸움에 출전하였다가 싸움이 일단 끝나자 그는 뜻한 바 있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서당의 조부인 잉피 공과 문노 승은 한 문하에서 커간 사람들인데 이들과 또한 함께 한 스승 밑에서 수학한 사람 중에 원광법사라는 이가 있었다.

 원광 법사는 잉피 공이나 문노 승과는 달리 풍류도에서 일찍 나와 불문에 투신하여 불도를 닦아서 대성한 분이다.

 법사는 풍류도에서 잔뼈가 굵은 뒤 20세에 불가로 몸을 옮겨서 25세에 중국에 유학, 여러 고승을 찾아뵙고 대승경전을 배웠다.

 진평왕 22년. 유학한 지 12년만에 귀국한 법사는 서당의 고향에서 멀지 않은 솔이산현(지금의 청도군)의 깊은 산속에 조그만 암자를 짓고 조용히 도를 닦고 있었다.

 이 무렵에 화랑 출신인 귀산과 추항이 법사를 찾아가 제자의 예로 뵈옵고 평생에 좌우명으로 삼을 법문을 설해주소서 하고 청하매 저 유명한 세속오계를 일러 주었던 것이다.

 세속오계란,

 첫째, 충성으로서 임금을 섬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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