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그리움
상태바
침묵의 그리움
  • 관리자
  • 승인 2007.07.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지심 연작소설

새벽에 일어나서 대문 앞에 떨어진 조간신문을 집어가지고 온 강여사는 대충 큰 가사만 흝어보다가 하단에 있는 광고난으로 눈길을 보냈다.

마침 월초라서 그런지 신문하단은 대문짝만한 월간지 광고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모든 잡지가 한결같이 개인 혹은 집단의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들로 꾸며져 있었다.

신문을 넘기면서 광고물을 드려다 보고 있던 강여사는 가슴속이 답답해 지면서 암담한 절망감 같은게 느껴져 들고 있던 신문을 탁자 위에 던져 놓고 창가로 걸어갔다. 독 묻은 화살은 입으로 뿜어내고 있는 아수라들의 현장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였다.

‘신문이고 뭐고 그만 다 끊어버리고 말까?’

강여사 머릿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안면 때문에, 구독을 권유하는 사람의 간청 때문에, 그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이런 저런 이유로 해 조간 세 개 석간 하나를 보고 있는 강여사로서는 신문 가지 수가 많으면 많은 만큼 자신의 정신적 황폐화도 더 커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것은 신문뿐 아니라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였다. 저녁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 궁금해서 뉴스를 틀면 텔레비전 화면에는 예외없이 정치인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들의 표정과 말속에는 언제나 독이 배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뿜어내는 독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전국방방곡곡으로 퍼져갈 때 그것을 보고 있는 국민들의 심성이 어떤 방향으로 변모되어 가고 있을까에 대해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본 일이나 있는지.

말을 다스릴 수 있으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했다. 늘 입으로 하는 말이지만 말을 다스리는 일은 천하를 다스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어려운 말을 요즈음 사람들은 너무 쉽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쉽게 하고 있다는 것은 말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 곧 알게 된다. 말은 형체가 없지만 말만큼 천변만화의 조화를 부리며 타인의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것도 달리 또 없으리라. 무심히 던진 한마디의 말은 생명을 살리는 한잔의 감로수가 되기도 하고 생명을 죽이는 한잔의 독약이 되기도 한다. 말은 시든 생명을 살려내기도 하지만 산 생명을 시들어 죽게도 만든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생명을 죽이는 독 묻은 말들이 편만해 있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 그러면 우리는 서로가 뿜어내는 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죽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이라고 할 때 우리는 보통 음성으로 표현되는 소리만을 연상한다. 하지만 말은 소리만이 아니다. 표정 몸짓도 말이고 문자로 기록되는 글도 말이다. 천마디의 웅변에서 보다 한순간의 표정이나 미소, 한 줄의 글에서 더 깊은 감동을 받게 되는 것도 그것들이 모두 진실을 전달하는 매체 즉 말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같은 매스미디어 시대에서 전파나 활자를 이용해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말 앞에 좀 더 진지하고 숙연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자신이 토해낸 말들은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위력을 지니고 무한대로 확산돼 가기 때문이다.

강여사는 탁자 위에 던져 놓은 신문을 다시한번 내려다보았다. 광고난에는 이름 석자만 대면 세상사람들이 다 알만한 이름들이 주먹만한 활자로 실려 있었고 그 이름들은 모두 다 오물을 뒤집어 쓴 채 무참하게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이래도 좋은 건가? 정말 이렇게 할 수 있는 권리가 그들에게 있는 것인가?

강여사는 씁쓸함을 느끼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겉으로 떠도는 말과 사실은 엄청나게 다를 수 있다. 실제로 드러난 사실과 사실 뒤에 숨은 진실은 더 엄청나게 다를 수 있다. 한 개인속에 내재해 있는 진실도 모른 채 몇십년 동안 쌓아온 타인의 생을 송두리째 짓밟는 일은 무서운 죄악이다. 그 죄악을 수많은 독자들한테 함께 짓게 하는 것은 더욱 무서운 죄악이다. 이러한 죄악이 책 몇권을 더 팔기 위한 상술과 통하고 있다면 그것을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강여사는 너무도 마음이 울적해져서 창문에 쳐진 커텐을 젖혔다. 바깥 날씨가 차기 때문인지 유리문에는 습기가 뿌옇게 서려 있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