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조건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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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조건에 있지 않다
  • 관리자
  • 승인 2007.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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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잘 사는 법

옛날에 나는 어렸을 때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옛날이야기를 즐겨 들었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살았단다.” 이러곤 끝이다. 어떤 이야기의 끝도 똑같았다. 물론 이야기의 중간 부분에 이야기의 주인공이 겪는 갈등과 고통은 있었겠지만 특이한 것은 잘 살았다란 말 앞에 늘 ‘잘 먹고’란 말이 붙어 다닌다.

당시는 우리나라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라서 그럴까. 먹는 일 먹는 이야기가 ‘해피 엔딩’의 상징처럼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잘 산다는 것은 결국 ‘잘 먹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기준 하나가 잘 산다는 평가기준이라면 나는 분명히 잘 살고 있다.

그런데 흔히 “밥만 먹고 살 수 있는가”라는 말로 문화적인 욕구에 대한 강한 주의를 환기시킨다. 사실 그렇다.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사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양식으로 발달한 문화는 다양하게 인간의 욕구에 영향을 줌으로써 사회적 욕구로도 파생한다.

소위 ‘사회적 최소한(Social mini-mum)’이란 용어에서 보듯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문화적 욕구를 충족해야 하는 최소한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가를 놓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많이 달리하고 있다. 그 사회적 최소한이란 기준은 세월의 흐름과 문명의 발달에 비례하여 증가했음은 주변을 간단히 살펴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옛날에는 생각도 못했던 문명의 이기들이 지금은 문화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으로 둔갑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누구나 다른 행복의 기준

며칠 전 언젠가 재미있는 신문보도가 하나 있었다. 옮겨 본다.

“세계의 178개 국가를 상대로 연구한 영국의 레스터(Leicester)대학 심리학 팀이 발표한 행복지수의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가 하위권인 102위에 기록되어 있다. 한국인은 대체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말이 된다.”

178개국 가운데 102위라면 분명 잘 산다고는 할 수가 없다. 다른 연구에서도 보면 잘 산다는 것이 반드시 경제력에만 비례하지 않는다는 연구는 많다. 언젠가의 연구에서 세계 제1의 행복지수는 방글라데시란 발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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