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방한은 한국불교에 희망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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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방한은 한국불교에 희망을 줄 수 있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6.09.0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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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어떤가. 평가하는 사람의 처지와 이해관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겠다. 더구나 종교처럼 합리화와 핑계가 많은 분야가 또 있을까. 종교 주위에서 맴돌며 밥벌이하는 사람이야 종교의 역할을 과장하고 싶어 한다. 예루살렘 성전을 근거로 가족을 부양하던 노동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지 겨우 이천 년 지났다. 종교와 돈은 빛과 그림자처럼 일심동체 아닌가. 한국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을 불교, 개신교, 가톨릭으로 우선 제한해보자. 몇 가지 부정적 특징이 금방 드러난다.

첫째. 세 종교에 각각 지금처럼 돈이 넘쳐난 적은 역사에 없었다.
둘째. 세 종교 모두 지금처럼 부패한 적은 역사에 없었다.
셋째. 세 종교 모두 지금처럼 직업 종교인들이(스님, 목사, 신부) 무능하고 수준 낮은 적은 역사에 없었다.

어느 종교가 먼저 망하는가, 서로 치열하게 시합하는 듯하다. 어느 종교가 먼저 망한다 해도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종교가 중생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이 종교를 걱정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중생들이 스님, 목사, 신부를 걱정하는 것이지 스님, 목사, 신부들이 중생을 염려하지는 않는다. 스님, 목사, 신부들은 중생 구제는 꿈도 꾸지 말고 종교인들 자신이나 깨우칠 생각이나 하라는 말이 돌아다닌다.

시정잡배들도 종교인을 즐겨 비난하는 세상이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종교인들의 자업자득이다. 스님, 목사, 신부들이 종교를 망가뜨린 것이다. 스님, 목사, 신부들 탓에 종교 망국론이 생기고 있다. 종교망국론에서 책임 논쟁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종교 지배층은 있어도 종교 지도층은 없다는 말이 있다. 이런 종교가 아편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지난 6월에 성철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을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됐다. 성철 스님 우표에 ‘불기자심不欺自心’이라는 친필 글씨도 함께 실리게 되었다.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는 뜻이다. 이 말을 불교에게, 아니 모든 종교에게 전하고 싶다. 불교는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 스님들은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 종교는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 성철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 시대를 자승 스님과 염수정 추기경 시대와 비교해 보자. 어느 시대 종교가 더 나았는가.

그러나 여전히 종교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 창시자의 감동적인 가르침과 삶에 매혹된 사람들이 있다. 험한 세상에서 그래도 마지막 희망은 종교에게 두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종교의 긍정적 역할을 믿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종교는 아편이 아니라 치료제임을 믿기 때문이다.

모범적인 종교인의 사례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본인들이 자신의 사례들을 공개하기 사절하는 탓도 있다. 부정적이고 충격적인 뉴스가 시청률을 높이는 데 더 유리하다. 종교인 개인의 비리를 마치 종교 전체의 부패인 양 오해하는 세태도 없지 않다.

눈에 보이는 산이 있고 바닷속에 감추어진 산도 있다. 종교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산, 긍정적인 모습을 바닷속에 감추어진 산이라고 비유하자. 종교가 실천하는 일상적인 선행은 언론의 눈에 자주 포착되지 않는다. 우리 생각보다 더,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더 긍정적인 모습이 종교에 분명히 있었고 지금도 있다. 종교는 자신의 선행에 좀 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흔히 종교 역사에서 이런 이상한 관행이 있었다. 
첫째. 종교 조직의 문제를 개인 문제로 바꿔치기 한다. 
둘째. 조직의 문제 대부분 직업 종교인들이 저지르지만, 흔히 그 책임은 일반 신도들에게 돌려버린다. 
셋째. 개혁은 직업 종교인의 개혁부터 시작해야 마땅하지만, 흔히 모두 각자 개혁하자는 말로 얼버무린다.

그런 관행을 종교, 특히 직업 종교인들이 없애지 않으면, 참된 참회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종교는 사람들에 아편을 권하는 종교다. 말하자면, 종교 망국론과 종교 희망론이 충돌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아편을 주는 종교와 치료제를 주는 종교가 경쟁하고 있다. 종교는 어느 길을 갈 것인가.

흔들리는 시대에 얼마 전 한반도 밖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다.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고통 앞에 중립 없다.”라는 가르침을 남기며 우리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주었다. 교황이 떠난 후 우리 종교와 사회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종교 분야에서 변화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여러 의미에서 가까운 인물인 달라이 라마. 그분을 한국에 모시려는 움직임이 있다. 달라이 라마 방한에 중국과 교황청이 언급되지 않을 수 없다. 외교적으로 중국의 태도, 종교적으로 교황청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싶다. 마침 얼마 전 언론의 두 가지 보도가 흥미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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