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붓다] 왜 나와 당신이 부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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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붓다] 왜 나와 당신이 부처인가?
  • 불광출판사
  • 승인 2016.05.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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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스님

무비(無比, 74) 스님은 한국불교의 대표 강백으로 불린다. 근대 한국불교 대강백인 탄허 스님의 제자이기도 하고, 수많은 경전과 어록을 번역했기에 그렇다. 또 인터넷에 카페 ‘염화실’(http://cafe.daum.net/yumhwasil)을 열어 일반 대중과 공부를 공유하고 있다. 1958년 부산 범어사에서 출가한 스님은 1964년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고, 10여 년 동안 여러 선방에서 안거했다. 1976년 탄허 스님에게 『화엄경』을 수학하고 이후 통도사, 범어사 강주,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동국역경원장, 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부산 문수선원 문수경전연구회에서 100여 명의 스님과 200여 명의 재가 신도들에게 『화엄경』을 강의하고 있다. 역서와 저서는 수십 여 권에 이르며 현재 일생 마지막 작업으로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을 집필 발간 중에 있다. 스님의 수많은 저작들 중에 눈여겨 볼 것은 바로 『당신은 부처님』(불광출판사)이란 책이다. 2011년에 출간된 160여 쪽의 이 작은 책은 무비 스님을 한국불교 대표 강백뿐 아니라, 한국불교의 미래 방향을 알리는 사상가로 재인식시킨다. 

- 왜 사람이 부처님인가요?

“사람의 삶이란 것이 별것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이 믿는 바대로 그 일에 탐욕을 부리며 삽니다. 보통 사람들도 그렇고 부처님이나 다른 성인들도 다 그렇습니다. 다만 욕심의 대상이 다를 뿐입니다. 때에 따라서 울화도 치밀고 가슴도 쓰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소화해내는가 하는 것은 개인에 따라서 다 다릅니다. 정도의 차이가 약간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삶입니다. 수시로 변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 그 현상을 두고, 부처니, 중생이니, 성인이니, 범부니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견해입니다. 탐욕을 부리고 화를 내고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는 것이 사실은 참다운 부처의 능력입니다. 『금강경』에도 ‘일체법이 모두 불법이다.’라고 했습니다. 일체법이 무엇인가요? 눈만 뜨면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을 짓을 하는 그 일이 아닌가요? 그런 삶을 떠나서 불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모두 부처님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부처님입니다.’”

- 스님의 말씀처럼 ‘당신이 부처님’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불자들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 일반 불자들은 부처에 맞는 행해가 따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런 질문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새카만 중생이 왜 부처인가? 부처님은 선량하고 지혜롭습니다. 또 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 부처입니다. 중생은 이기심투성이입니다. 그런데 왜 중생이 부처냐? 이런 의문이 나오는 것은 부처에 대한 잘못된 상식 때문입니다. 이기심이 있으면 부처가 아니라는 선입견 때문이죠. 그 상식을 놓아두고 빈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 부처에 대한 잘못된 상식과 선입견 때문이라면 어떻게 이를 벗어나야 하나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도道를 물으니 구지 선사具指禪師가 손가락 하나를 들었습니다. 이게 무엇이겠어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중생이다 부처다 할 처지가 아닙니다. 단, 질문하고, 대답했을 때 손가락을 들든, 주먹을 내든, 소리를 치든, 주장자를 치든 똑같습니다. 부처의 모습과 부처의 작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부릴 줄 아는 그 능력이 부처입니다. 부처에 대한 잘못된 상식으로는 이 부처의 이야기를 잘 모릅니다. 여기서 늘 걸립니다. 부처가 아닌데 어떻게 화내고, 욕심을 부릴 수 있겠습니까. 부처이니까 욕심을 부리고 화를 내죠. 그것이 부처의 능력입니다.” 

-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좀 더 설명해주십시오. 

“이것을 이해하려면 선악善惡 관념을 떠나야 합니다. 선과 악 관념이 있으면 이해가 안 됩니다. 모든 경전이나 어록에는 한결같이 ‘있는 그대로 부처’라고 했지만 자세한 설명이 없습니다.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금으로 사람을 죽이는 칼이나 창을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구죠. 그런데 욕심 있는 사람은 그 도구를 칼이나 창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게 제대로 본 것이죠. 칼이든, 창이든, 불상이든 무조건 금이죠. 칼이니 창이니 하는 것은 관념입니다. 본래 모습은 금입니다.” 

- 일반 불자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것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깊이 사색하고 성찰하면서 가슴에 와 닿게 되면 달라집니다. 모든 사람을 부처로 볼 수 있게 되면,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악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임제 스님은 이 근본을 안다면 ‘구업이 저절로 녹는다. 중생의 업장이 눈 녹듯이 저절로 녹는다.’고 했습니다.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불교의 기존 상식에 젖어있다면 쉽지 않습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잘못된 부처에 대한 상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웠습니다. 소지장所知障, 아는 것이 장애가 된 셈입니다.”  

- 스님은 『법화경』에서도 그 핵심을 ‘사람이 부처다’는 것으로 정리하십니다. 

“예. 『법화경』은 ‘사람이 부처다.’라는 것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어요. 부처님께서 수기를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처음에는 큰 제자들에게 형식을 갖추어 주다가, 나중에는 오백 명, 이천 명을 한꺼번에 줍니다. 같은 이름으로. 이게 무슨 뜻입니까? 모든 사람이 부처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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