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행위는 전부 마음에 달렸다
하루 동안 하는 모든 행위들은 전부 마음에서부터 나옵니다. 지금 법문을 귀로 듣고 계시지요. 그런데 마음이 함께하지 않으면 법문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집에 뭐 두고 왔는데 괜찮은가?’ 하고 마음이 다른 곳에 가있으면 귀가 소리를 받아들여도 들리지 않지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이 여섯 가지 경계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상대하면 여섯 가지 인식 작용인 육식六識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때 식이 발생하려면 반드시 의근意根, 마음이 함께해야 합니다. 이때 자기의 생각을 일으켜 하는 모든 행동에는 인과법이 적용됩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들을 업業, 까르마karma라고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모든 업에는 과보果報가 발생합니다.
우리가 하루 종일 짓는 업은 몇 가지로 나눠서 말해볼 수 있을까요. 천수경에서 보면 열 가지 업으로 이야기합니다. 열 가지 업은 신삼身三·구사口四·의삼意三, 즉 신업 세 가지, 구업 네 가지, 의업 세 가지입니다. 천수경 십악참회를 살펴보면 살생중죄·투도중죄·사음중죄는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업입니다. 그다음 망어중죄·기어중죄·양설중죄·악구중죄는 입으로 짓는 업입니다. 그다음 탐애중죄·진에중죄·치암중죄는 뜻으로 짓는 업입니다.
그 중 가장 잘 살펴야 하는 업을 한 가지만 든다면 당연히 의업입니다. 왜냐면 신업과 구업도 마음이 함께했을 때 과보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마음 안에 다 들어있어요. 핵심은 마음이에요.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흔히 말하는 정신세계나 도달한 마음자리가 다르다고 보는 것입니다.
| 마음 성품에 악업은 본래 없다
화엄경에서는 우리 불자님들이 수행하는 과정의 마음자리를 42단계로 이야기합니다.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 등각等覺, 묘각妙覺의 단계예요. 그런데 만약 42층짜리 집을 지으려면 터를 잘 닦아야 하지요. 이 42단계 전체를 받쳐주는 터를 닦는 자리가 신심信心입니다. 신심을 토대로 깨달음을 성취해 이 몸 바로 온전히 부처님처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화엄경을 읽어보면 신행 생활하는 보살이 이 계위에 머물면 어떤 행위가 드러나는가, 각 계위마다 구체적으로 만약에 그렇게 안 될 때는 이런 과보가 있다고 연결해서 설명해놓았습니다.
십지十地의 두 번째 계위인 이구지離垢地에서는 십선업十善業을 지계바라밀의 덕목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구지란 모든 번뇌의 때를 여읜 자리라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나 무슨 생각을 하든지 잘못이 없는 깨끗한 지위를 말합니다. 이구지에서는 열 가지 악업의 성품을 여읜, 열 가지 선업十善業을 실천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십선업의 처음에 불살생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처님 제자로서 부끄럼 없이 살고자 한다면 살생과 거리가 멀어야겠지요. 이 자리에 머물러있는 보살수행자는 살생과는 전혀 상관없는 성품의 소유자예요. 살생을 할 수 있지만 참기 때문에 살생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성품 자체가 살생과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절로 일체살생을 멀리합니다. 저절로 모든 살생을 여의게 되니 살생도구를 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살생할 도구를 쌓아두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살생을 할 수 있는 도구인 몽둥이나 칼 따위가 살생도구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 중에 이런 가족이 종종 있습니다. 할머니가 열심히 방생을 하러 가십니다. 할머니의 아들은 직장 상사와 함께 낚시를 다녀요. 할머니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아들아 내가 소원이다. 제발 낚시를 하지 말아다오.” 아들이 어머니의 간곡한 회유에 낚시를 그만두려 했습니다. 그런데 좋은 낚시 도구를 버리긴 아까우니 친구에게 줬어요. 이럴 경우 마음 성품이 살생과 전혀 상관없고 살생을 여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낚싯대를 준 것은 살생하라고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 대신 다른 사람이 살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경에서는 만약 살생을 했다면 인간계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단명하거나 병이 많다는 두 가지 과보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살생의 죄업이 크면 지옥·아귀·축생 삼악도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 참회도 진실한 마음으로 하라
이처럼 마음 성품에 악업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만약 악업을 짓는다면 분명한 업보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은 업보의 소멸은 참회가 있어야 이뤄질 수 있습니다. 참회도 진실한 마음으로 올바르게 해야 합니다.
지금은 입적하셨습니다만 봉녕사에 세주묘엄 스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10여 년 동안 해마다 봉녕사에 화엄특강을 하러 다녔었는데 어느 날 점심 공양 후 쉬는 시간에 스님께서 옛날 윤필암에 행자로 계실 때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함께 행자생활을 했던 다른 스님과 둘이서 사중 심부름으로 산을 넘어 큰 절 대승사에 가서 콩을 한 자루 얻어 오던 길이었습니다. 힘이 들어서 나무그늘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콩 자루를 내려놓다가 그만 콩이 쏟아졌습니다. 두 분이 열심히 주워 담았는데 풀도 있고, 흙도 있고 하니까 몇몇 알은 다 못 찾은 채 흙으로 탁 덮어버리고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 대승사에서 성철 큰스님이 윤필암에 오셨습니다. 오셔서는 “행자 느그 둘 와봐라. 느그 뭐 잘못했제?” 그러셨다는 거예요. 옆에 있던 다른 행자가 “잘못한 거 없는데요?” 하니, 성철 큰스님께서 불호령을 내리셨습니다. “내 여기 올라오다보니까 나무 밑에 콩이 싹이 나가지고 자라있더라. 그거 느그가 한기 아이고 뭐꼬?” 그 동안 비가 온 바람에 흙으로 얼버무렸던 콩에서 싹이 나 자랐던 것이었습니다. 그 길로 법당에 올라가 3,000배 참회 절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철 큰스님께서도 법당에 들어오셔서 어간에 앉아 염주를 굴리시면서 “느그가 거짓말을 해서 참회를 하는데 또 3,000배 안하고 다 했다고 거짓말할까봐 내가 세고 있다.”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올바르게 참회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다고 합니다. 참으로 감동스러운 큰스님의 자애로우심이라 하겠습니다.
| 인연조차도 내 마음이 만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인연, 깨달음을 이루는 수행의 연緣조차도 실은 모두 자기 마음이 만드는 것입니다.
육도윤회, 지옥에서부터 천상까지 여섯 가지 윤회의 길 중에 우리는 인간계에 속해있습니다. 육도 가운데 복이 많은 대표적인 두 세계를 든다면 인간계와 천상계입니다. 이 인천복보人天福報를 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깨달음으로 향해서 갈 수 있는 곳은 인간계가 최고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즐겁기도, 슬프기도, 절망하기도, 희망을 갖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계는 무상의 고통을 여의고 열반의 즐거움을 얻고자 발심하는 장소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부처님 성품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처럼 자유자재하지는 않지요. 자유자재하려면 깨달음을 얻고자하는 발심의 인연이 있어야 합니다. 깨달음의 기연機緣이 굉장히 소중합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성품이 그대로 발현될 수 있도록 불보살님의 가피와 스승님의 가르침과 많은 불자님들의 도움을 받아요. 그러한 인연조차도 실은 자기 마음에서 만들어져 나옵니다. 내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법회를 열어도 들으러 오신 여러분의 법회입니다. 연緣도 인因인 나에게 달렸다는 말입니다. 여기 부처님 정각의 도량에서 다함께 만남은 서로 굉장히 소중한 참 좋은 인연입니다. 좋은 인연으로 행복한 나날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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