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주의와 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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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와 禪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8.0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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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보는 시각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관념적 관점으로 자연이나 대상을 표현하던 작가들에게 과학의 발달은 커다란 변화의 계기였다. 작가들이 자연을 보는 시각과 지각의 변화는 그대로 표현으로 표출됐다. 시간과 인식의 관점에서 자연이나 대상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아차린 인상파 화가는 작품 속에 시간성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인상파 이전의 작품들이 고정된 시간으로 대상에 대한 특성을 파악하고자 했다면 인상파 화가들은 시간의 변화를 표현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했다.

| 추상표현주의와 선
즉, 작품을 제작하는 시간에 따라서 대상에 대한 인지 관점이 변화하고 그 시간성 속에서 자신의 미학적 특성을 만들어 가고자 했다. 원근법이라는 절대적인 표현체계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거리에 따라 앞에 있는 대상은 크게, 뒤에 있는 대상은 작게 그려야 한다는 원근법의 법칙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당시에는 많은 논쟁과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나 시대적인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화면에서 원근법은 사라지고 작가가 인지하는 대상만 표현되는 특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근법의 가치를 가장 극단적으로 무시하고 새로운 표현성을 구축한 화가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 스페인)는 큐비즘을 창시했다. 자연을 보는 관점과 표현에서 새로운 방식을 구축했다. 이후 빠른 속도로 변화를 거듭하는 표현성은 자연을 ‘인식의 전환에 영감을 주는 존재’로 수용했고, 화가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갖게 됐다. 보이는 것을 재현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것을 자연을 통해 인식하고자 했으며 이를 표현한 것이다.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 1912-1956, 미국)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표현을 극대화한 작가 중 한명이다. 액션페인팅으로 명명되는 그의 작품들은 온몸으로 작업한 결과다. 작품의 하면에는 행위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시간성, 공간성, 대상이 사라지고 작가의 행위가 표현의 주체가 된 것이다. 그의 작업과정은 일정한 형식이나 방식이 정해진 것 없이 화면 위에서 순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교착점을 찾아 행해진다. 선사들의 무애행에 비교되기도 한다. 당시 미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동양사상, 불교, 선에 대한 작가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전쟁 이후에 나타나는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고자하는 노력들이 예술 세계에서도 많이 일어났다.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표현방식을 찾는 것이었다. 폴록은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자신의 예술적인 가치를 추구했다. 그는 이성의 틀에서 벗어나 감성과 무의식의 관점을 표현하고자 했다. 무수히 많은 선線들이 서로 엉키면서 만들어내는 화면은 불교의 인드라망을 연상시킨다. 인연의 이치가 마치 얽혀있는 실타래 속에서 서로의 관계성을 찾아가는 것처럼 그의 작품들은 이러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문화적 배경에는 선禪을 이해하는 미국적인 관점들도 엿볼 수 있다. 모든 것이 공空하니 세상을 즐겁게 살면 된다는 히피문화 역시, 당시 미국인들이 가진 선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이후에 점차적으로 인과(인드라망)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면서 자위적인 자유에서 절제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이러한 당시의 미국문화에서 폴록 역시 극대화된 자유를 추구했다. 문화적 해방을 꿈꾸는 많은 작가들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미국을 찾아 모여든 것 또한 미국의 자유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이후 이러한 문화적인 현상은 예술의 역사가 미천한 미국에 다양한 양분을 공급하는 계기가 됐으며, 나아가 독자적인 미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즉, 혼란을 통한 자가 정화를 획득한 많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표현성으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신적 가치를 표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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