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성과 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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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성과 禪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6.1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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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자신의 작업실에 나타난 환상적인 작품을 보고 한스 아르프(1887-1966, 프랑스)는 크게 감동한다. 분명 자신의 작업실인데 ‘누가 저런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지?’ 하며 작품에 가까이 간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환상적인 작품은 그가 전날 그리다 마음에 들지 않아 찢어 버리고 간 그의 그림이었다. 우연히 조합된 그 그림은 새로운 조형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감동적인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후 우연을 작품에 도입시킨 아르프는 새로운 조형성을 창조하며 작품들을 해 나아갔다.

| 조형성과 선禪의 관계성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인 구도, 형태, 색상 등을 합하여 조형성이라고 한다. 아르프가 발견한 조형성은 우연성에 의한 조합이었다. 그 전의 조형성은 조형적인 요소들이 일정한 법칙에 의해 화면에 구성되는 것이었다. 비례와 균형, 대칭과 비대칭, 색상 등 다양한 법칙들이 작품에 어떻게 배합되는가에 따라서 조형성이 결정된다.

‘조형성과 선禪의 관계성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그 답을 찾아보자. 조형성은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아이디어)에서부터 고려해야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조형성을 통한 작품을 창조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작품에 사용되는 재료나 대상, 기법 등이 비슷한데 어떠한 조형성을 추구하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 세계의 작가들 중에 사과를 그리는 작가가 수백 명은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작품도 똑같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과를 보는 관점(작가의 생각)이 다르고, 또한 사과를 화면에 배치하고 색칠하는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대상은 동일하지만 조형성은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각각의 특성을 보여준다.

동일한 대상을 보는 관점과 대상에 대한 이해나 감성, 판단이 다르게 작용하는 것이다. 이는 수행자의 모습과 흡사하다. 수행자는 동일한 대상(자연)을 보지만 각각 다르게 인식하고 느끼며, 그 내면의 깊이를 찾아가고자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내용이지만, 깃발이 바람에 흔들릴 때, 바람이 깃발을 흔들리게 하였는가? 아니면 깃발이 흔들리니 바람이 일어났는가? 아니면 마음이 움직였는가? 이처럼 동일한 대상을 보고 있으나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인식이다. 선사는 마음이 움직이니 대상이 움직인다고 하지만, 선사가 되기 전 그들의 인식에서는 여전히 깃발과 바람이 움직인다. 깃발이 움직인다고 보는 사람은 깃발이 중심이다. 만약 이러한 내용을 작품으로 조형화 한다면 그는 분명 깃발을 중심으로 표현하려고 할 것이다. 즉, 다시 말해 그가 인식하는 대상은 곧 그의 마음이 된다. 마음이 움직이니 대상에 분별이 생겨나고, 그 분별을 극대화하다보면 분별이 없어지고 마음만 남는다. 이러한 수행방법은 어떠한가?

현대미술이 철학화되어 간다고 비판하는 학자들도 있다. 대상에 대한 인식을 강조하다보니 대상은 사라지고 기호화, 상징화된 형상과 색채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현대미술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이나 인식의 코드에서 해석이 불가능한 암호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가 그 암호를 해독할 것인가? 

수행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많은 수행자들이 선을 체험하면서 또는 선과 관련된 서적을 탐독하면서 느끼는 양상이 이와 비슷하다. 동일한 사과를 보면서 설명하고 있으나 각각 기호화되고 상징화되어 해독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토로한다. 즉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암호화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체계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한 현대미술은 새로운 조형성을 통하여 인식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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