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꽃눈은 나를 닮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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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꽃눈은 나를 닮았더라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5.0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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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 화엄사, 구층암, 연기암, 지장암

있는 힘껏 자라기로 했다. 꽃샘추위가 지나가고 봄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나면 이제는 꽃망울을 터트릴 때다. 섬진강 줄기를 따라 올라올 봄을 마중가고 싶었다. 떠나자. 운동화 끈 질끈 매고 버스에 올랐다. 구례 화엄사와 화엄사 산내 암자들을 찾았다. 따뜻한 햇살 맞으며 내딛는 발걸음을 흙이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바람에 실려 오는 흙내음이 향긋하다. 성큼성큼 가까워졌다. 걷잡을 수 없이 봄이다. 

| 화엄華嚴, 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하다
서울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3시간 10분. 전남 구례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어느 곳으로 시선을 돌려도 눈이 편안했다. 높은 것이라곤 물결치듯 완만한 지리산 능선과 하늘뿐. 좋다. 지리산 화엄사로 향했다.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에서 지智와 리利를 따와 지리산이라고 불렀다는 산, 그리고 지혜로운 문수보살이 굽어보는 산자락에 544년 연기 조사가 창건한 화엄사. 국보, 보물, 사적, 천연기념물이 곳곳에 있는 화엄사의 입구는 굵은 동백나무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서있다. 

천왕문을 지나, 폭이 좁은 계단을 올라, 보제루普濟樓를 끼고 돌아 마주한 경내에는 동·서 오층석탑(동오층석탑 보물 제132호, 서오층석탑 보물 제133호)이 대웅전을 장엄하고 있었다. 9세기 신라 하대에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웅전을 올라가는 계단 앞 좌우에 배치된 높이가 같은 석탑. 높이는 같지만 서탑은 화려한 문양을, 동탑은 장식 없이 단정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어쩐지 석탑이 이란성 쌍둥이처럼 느껴진다. 저마다 개성 뚜렷한 탑이 부처님 계신 곳을 장엄한다 생각하니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10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저 탑들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까.

대웅전 부처님께 ‘부처님, 저 왔습니다.’ 인사를 올리고 나와 홍매화를 찾았다. 조선 숙종 때 각황전을 중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계파 선사가 심었다는 홍매화. 다른 홍매화보다 꽃이 검붉어 흑매화라 불리는 수령 300년이 넘은 나무에게도 인사를 했다. 도량을 둘러보니 능소화, 백일홍, 매화, 동백, 산수유들이 저마다 모두 망울망울 단장 중이다. 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한다는 뜻의 잡화엄식雜華嚴飾에서 나온 말, 화엄華嚴. 꽃이 반드시 열매를 맺듯 보살의 행위 또한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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