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不二의 땅, 영축산 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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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不二의 땅, 영축산 통도사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1.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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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자재로이 창공을 나는 한 마리의 독수리. 영축산靈鷲山이다. 산의 남쪽 기슭, 바람은 적요하고 소나무 울창한 터에 영축총림 통도사는 자리 잡고 있다. 독수리의 형상을 닮아 축서산鷲棲山이라 하다가 신라 선덕여왕 15년(646) 통도사 창건과 함께 영축산으로 불리게 된다. 부처님 당시 설법하시던 바로 그 산이다. 진속불이眞俗不二. 2,500여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화엄의 설법이 울리는 땅. 금방이라도 날개를 퍼덕일 듯 기운찬 산은 통도사와 산중암자들을 안온한 깃털 아래 자애롭게 품어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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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진신사리 금강계단에 모시다
통도사는 선덕여왕 15년(646)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가 창건했다. 귀족 출신으로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20대 초반 논과 밭을 희사하여 원녕사를 짓고서 불가에 귀의한 스님은 대신의 자리에 오르라는 여러 차례의 왕명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계를 지키고 죽을지언정 파계를 하고 100년 동안 살기를 원하지 않겠다.”던 사자후는 유명하다. 이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자장 스님은 중국 계율종의 본산인 종남산과 문수보살의 주처인 오대산에 머물렀다. 여기서 자장 스님은 문수보살의 현신을 만나 석가모니부처님이 입던 가사 한 벌과 발우 하나, 부처님 정수리 뼈와 치아사리 등을 전해 받고 643년 선덕여왕의 요청으로 귀국했다. 

스님이 부처님 가사와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금강계단을 세우자 사리를 친견하고자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의 참배가 이어졌다. 통도사가 신라의 계율근본도량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 것이 곧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었다. 자장율사는 우리나라에 화엄사상을 처음으로 전한 인물이기도 하다. 매년 연말 통도사가 열고 있는 화엄산림법회는 화엄사상을 전파한 자장율사의 맥을 잇는 설법의 장이다. 통도사 대웅전에는 진신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을 향해 참배할 수 있도록 불상을 모시지 않고 금강계단을 볼 수 있는 창을 냈다. 전각의 4면마다 서로 다른 현판이 걸려 있다. 동쪽에는 ‘대웅전’, 서쪽에는 ‘대방광전’, 남쪽에는 ‘금강계단’, 북쪽에는 ‘적멸보궁’이다. 대웅전 지붕의 상부에는 도자기로 빚은 연꽃봉오리 장식이 있어 장엄에 기울인 정성이 엿보인다.

통도사의 가람 배치는 독특하다. 안쪽의 금강계단을 기점으로 하여 완만한 경사를 따라 30여 동의 전각들이 물 흐르듯 내려오며 들어서 있다. 이 전각들을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 영역으로 묶어 구분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가람 배치는 한국불교의 사찰건축에서 유일하다. 통도사는 창건 이래 1,300여년이 흐르는 동안 전각들이 하나 둘씩 끊임없이 지어지고, 고쳐지고, 옮겨졌다. 그 결과, 역대 불교건축이 지녔던 모든 신앙을 함축한 전각들이 빠짐없이 자리하고 있으며 각 건물의 상징과 건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절묘한 공간 기법이 응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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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불교를 빛낸 통도사의 세 거목, 구하・경봉・월하
동안거 결제일 새벽. 달빛이 내린 통도사 경내에 도량석이 울려 퍼진다. 장엄한 새벽예불을 마치고 중로전 동쪽에 자리한 영각으로 사중의 스님들이 모여든다. 이곳에는 85폭의 역대고승 진영이 모셔져 있다. 영각은 평소에는 문을 열지 않아 참배의 기회가 드문데, 동안거 결제를 맞아 치르는 ‘영사재’ 의식을 위해 잠시 문을 연 것이다. 이곳에서는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를 비롯해 구하 스님, 경봉 스님, 월하 스님 등 통도사를 빛낸 역대 큰스님들의 진영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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