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 외딴섬 오곡도를 찾아온 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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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외딴섬 오곡도를 찾아온 달마
  • 장휘옥, 김사업
  • 승인 2014.12.03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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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광」 창립 40주년을 축하하며

2014년 11월은 「불광」 창립 40주년을 맞이하는 달이다. 축하 메시지를 보내려 하니 문득 중국 당·송 시대 선승들이 자주 사용하던 문구 하나가 떠오른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성철 스님 덕분에 이 문구는 우리에게도 꽤나 잘 알려져 있다.

송나라 때 청원 유신(靑原惟信, ?-1117) 선사가 법상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30년 전 이 노승이 아직 선에 입문하기 전, 산은 산이었고 물은 물이었다. 그 후 선 수행에 매진하여 깨달은 바가 있었을 때 산은 산이 아니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그저 물일 뿐이다.”

선 수행 초심자가 산과 물을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그러나 목숨 걸고 수행하여 ‘산과 나’, ‘물과 나’, ‘천지와 나’가 둘로 나누어지지 않고 하나가 되면,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요 물은 더 이상 물이 아니다. 너는 네가 아니요 나는 내가 아니며, 삶은 삶이 아니고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거기서 수행이 더 깊어져 깨달음을 얻게 되면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가 된다. 너와 나는 둘이 아니라 하나지만 너는 여전히 너이고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는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불광」 창립 40주년을 맞아 청원 선사 법문의 마지막 구절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그저 물이다’의 안목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온갖 시련을 헤치고 「불광」을 오늘의 위치에 올려놓은 여러분들의 열정과 노고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불광」과 하나가 되어 동고동락한 40년을 뒤돌아보면, 40년이란 느낌조차 없는 영원 속의 순간들일 것입니다. 「불광」은 여러분들에게 비교할 대상 자체가 없는 소중하고 고귀한 것이기에 매일 매일이 40주년 기념 아닌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불광」의 하루하루가 빛나는 날이기를 기원하면서 「불광」 창립 40주년을 축하합니다.”

 

| 오곡도를 찾아온 달마

우리가 선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 강단을 떠나 남해안 외딴섬 오곡도로 들어온 때가 2001년, 벌써 13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선 수행에 매진하느라고 일체의 외부 강의나 원고 청탁을 거절했기에 이젠 당연히 청탁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언젠가 스쳐 들었던 한마디 말도 종자로 심겨져 있다가 기회가 되면 싹을 틔운다는 진리를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2005년 겨울, 불광출판사의 여러분들이 우리가 운영하는 오곡도 명상수련원의 일주일 동계 집중수련에 참석했다. 간화선 수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한두 명이 아니라 사진 기자를 포함한 거의 전 직원이 참가했다. 우리는 그들의 용단을 진정으로 자랑스럽고 흐뭇하게 생각했다. 구면이 되면 원고 청탁이 있을 때 거절이 힘들지 모른다는 우려 또한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참으로 찬사를 보내고 싶은 일이었다.

일주일 간의 수행을 마치는 날 저녁의 총평시간에는 누구라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무엇이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광출판사의 어느 누구도 원고 청탁에 관해서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2007년 여름, 불광출판사 류柳 주간이 오곡도 수련원 하계 집중수련회에 참석했다. 수행을 마치고 떠나는 날 아침, 류 주간은 수련원 입구에서 손을 흔들며 한마디 인사말을 던졌다. “원고 부탁드립니다.”

올해(2014년) 8월 어느 날, 월간 「불광」 기자 두 명이 오곡도 수련원까지 무려 10시간이나 걸려서 찾아 왔다. 이렇게 먼 곳까지 굳이 찾아온 이유는 수련원을 취재하여 다음 달 「불광」에 기사도 실을 겸 「불광」에 연재할 글을 청탁하기 위해서였다.

2주 뒤, 9월호 「불광」이 나오자 이것을 가지고 이번에는 월간 「불광」 편집장과 불광출판사 기획부장이 오곡도 수련원까지 찾아왔다. 1년간 「불광」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연재가 끝나면 불광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할 것을 계약하기 위해서였다.

선은 머리로만 생각하면서 탁상공론 하는 것과는 아득히 거리가 멀다. ‘지금 이 자리’를 철저히 살아가는 것이 선이다. 우리는 「불광」 식구들의 성실하고 민첩한 행동에서 살아있는 달마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진취적 기상은 단호했던 우리의 의지를 꺾고도 남았다. 2007년 여름 류 주간이 남기고 간 “원고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흔쾌히 수락했다. “원고 부탁드립니다.”가 뿌린 종자가 7여 년 만에 싹을 틔우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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