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입술에 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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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입술에 걸리고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8.1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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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는 고요하다. 포터들의 모닥불도 꺼졌다. 멀리 걍진 곰빠의 불빛들도 그들만의 시간을 거두었다. 어둠의 층이 두꺼워진 계곡과 밤에도 스스로의 조명을 완전히 소등하지 않는 설산의 자태가 여전히 신비롭다. 육체적인 피로와 정신의 긴장감이 적당히 해제된 순한 시간, 어느 정도 익숙해진 히말라야의 시간과 공간은 이제 편안하게 나를 포옹하고 곁한다. 

| 여기와 거기가 서로 다르지 않거늘

예리함은 사라졌다. 차 한 잔을 들고 이 풍경에 동참한다. 느릿하게 배회하다 느긋하게 앉는다. 정좌正坐는 어울리지 않는다. 비스듬한 편좌徧坐가 결 고운 이 시간에 제격이다. 잠시 투명한 어둠, 멀리 강첸포 봉우리 위로 달이 떠오른다.

“아!!!” 어둠이 흔들리고 산이 출렁거린다. 그림자들 다시 서고 낯선 빛들이 풍광을 홀린다. 달빛의 기습이었다. 달은 예상했지만 이런 달빛, 그 아래 풍경은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달빛풍경을 뇌리에 담고 있는 기억들이 낯설어했다. 

한 동안 산이 되어 있었다. 말과 침묵도 사라진 의식의 무화상태. 이 풍경을 묘사할 모든 언어는 의식의 세계로 부상하기를 부끄러워했다. 달이 오를수록 언어는 더 깊이 침잠했고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뭔가 한마디 비명소리라도 내뱉어야 하는데 이 절대풍경에 금이 갈까봐 도무지 나오지를 않았다. 깊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문득 싯귀 하나가 머리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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