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말고 그냥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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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말고 그냥 쉬세요”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8.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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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학교 티베트 영어명상강의

“우선 당신 자신의 평화를 이루고 그 평화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달라이 라마의 꾸밈없는 일상을 담아낸 영화 ‘선라이즈 선셋’은 이 한 줄의 문장으로 시작된다. 중국의 통치권역으로 전락한 고국을 떠나 망명길에 오른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고승들이 전 세계를 돌며 강연과 법회를 여는 이유를 짐작케 하는 말이다. 한 재미교포 청년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평탄한 성장과정을 거쳐 유타주립대 신문방송학과에서 수학 중이었다. 2001년 어느 날 운명처럼 만나게 된 달라이 라마 대중강연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2년 뒤 수행 위주의 티베트불교 닝마파에 귀의해 프랑스에서 4년 간의 폐관 수행을 마친 그는 티베트 법명 Ludrup루줍 대신 용수 스님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이제 한국에서도 티베트 명상수행을 배울 수 있는 문이 늘었다.

| 명상은 스마트폰이다
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소나기가 한바탕 훑고 지나간 수요일 저녁, 돈암동 ‘풍경소리학교’에서 열리는 영어명상강의 현장. 용수 스님이 영어로 티베트 자비명상을 지도하는 자리다. 강의실 문을 여니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참가자 15명가량이 둥글게 둘러앉아 있었다. 이제 막 강의가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에 “Just relax(그냥 쉬세요).”라고 적었다.
“명상을 배우기 위해서, 명상이란 걸 하려고 하거나 다른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느긋해지세요. 아침에 집을 나서서 하루 종일 등산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때요? 피곤하고 쉬고 싶죠. 피곤한 몸을 소파에 내려놓았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그 순간에는 오직 ‘쉼’이 있을 뿐이잖아요. 그 느낌으로 편하게 앉아서 그냥 쉬세요.”
용수 스님은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쓸 수 있듯이 명상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스님의 영어표현은 단순하고 쉬웠으며 일상의 비유는 이해를 도왔다. 소파와 스마트폰의 비유는 복잡한 사고를 거치지 않고도 그대로 뇌리에 입력돼 오래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있던 차에 스님이 작은 종을 들어 올려 가볍게 흔들었다. 그 순간 생각은 흔적 없이 흩어지고 의식은 종소리에 모아졌다. 
“종소리가 들리나요? 지금 이 소리를 듣고 있다면 명상하고 있는 거예요. 듣고 있나요? 이것이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모양, 소리, 냄새, 맛, 촉감, 그리고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어요.”
스님이 종소리를 연이어 들려주는 동안 참가자들은 제각기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앉아 소리에 집중했다. 고요한 강의실에 한 줄기 청량한 바람이 감도는 것 같았다. 이어서 용수 스님이 스마트폰을 누르자 무선 연결된 스피커를 타고 귀에 익은 잔잔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비틀즈의 ‘Let it be(그대로 두세요)’였다. 용수 스님은 편안한 자세로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책상 위에 엎드려 쉬듯 소리 위에서 쉬는 것이 소리명상이에요. 소리 위에서 쉴 수도 있고 음식을 먹으며 맛에 기대어 쉴 수도 있습니다. 알아차림은 본래 자비롭고 친절한 인간 본성이 드러나도록 마음을 쉬게 합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저절로 자비의 본성이 나오지요. 일상생활을 하면서 상처, 원망, 억울함, 슬픔 등 부정적인 감정으로 힘들어 한다면 알아차림이 큰 도움이 됩니다.”
용수 스님의 강의에는 불교용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스님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어들을 위주로 쉽게 풀어서 말하는 화법을 썼다. 9주 동안 각각 3주씩 진행되는 프로그램 또한 ‘알아차리기’, ‘바꾸기’, ‘내려놓기’로 이름을 붙였다. 어려운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필요도, 낯선 단어를 새로 배울 필요도 없다. 그 또한 ‘쉼’이었다. 

|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법
Gom. 명상을 일컫는 티베트어다. 여기에는 ‘친해지다’, ‘익숙해지다’, ‘습관이 되다’라는 뜻이 들어 있다. 용수 스님의 스승인 밍규르 린포체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Gom의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는 좋은 예다. 지난 2002년 미국 위스콘신대학 뇌신경연구소가 밍규르 린포체를 뇌파촬영장치로 실험했다. 움직일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한 시간 넘게 비명소리 등을 들려주며 그의 뇌가 보이는 반응을 살핀 결과, 그는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사실 밍규르 린포체는 어린 시절 극심한 공황장애에 시달렸는데 공황장애와 친구가 되는 방법을 통해 그것을 극복한 경우다. 어떤 경험이든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맞이해 반가운 마음으로 친해질 수 있다면 고통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티베트 스님들이 뇌과학 실험에 응해 명상이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이러한 과학적인 실험으로써 밝혀진 것 중 하나가 우리의 뇌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지금 여기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소리를 듣는 동안에는 생각의 작용이 멈춘다는 사실이다. 생각을 하는 동안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이 다른 곳에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용수 스님은 그래서 우리는 생각중독자라고 말한다.
“일어나서 잠잘 때까지, 심지어 꿈속에서도 우리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생각 속 세상은 작습니다. 그런데 크다고 느끼죠. 왜 그럴까요? 그것이 전부라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생각에 빠지면 생각 속에 있기에 그 생각 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그럴수록 생각의 힘이 세지고 고통스러워집니다. 그런데 생각을 알아차리면 생각은 힘을 잃어요. 명상은 생각을 알아차려 내려놓는 겁니다. 그때 생각 이외에 무한한 마음의 본성의 세계를 알게 되지요. 훌륭하고 아름답고 지혜로운 존재가 자기 안에 있다는 것도요.”
2시간의 강의가 끝날 즈음 용수 스님이 숙제가 있다며 가방에서 꾸러미를 꺼내 참가자들에게 건넸다. 손목시계처럼 생긴 계수기였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혹은 편한 시간에 집에서 잠깐씩 앉아 명상을 하고 그때마다 계수기를 눌러 일주일 동안 그 횟수를 세어보라는 주문이었다. ‘짧게 자주’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알아차리려는 의도를 늘 간직하라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모두들 생각지 못했던 선물과 부담이 크지 않은 숙제로 일주일을 보낼 생각에 조금 상기된 표정이었다. 
참가자 중 강의 내내 태블릿PC에 강연내용을 기록하며 차분한 집중을 보여줬던 민지원(28) 씨는 요가를 배우다 티베트 명상을 접하게 됐다고 했다.
“요가를 오래 했어요. 인도에 갔다가 티베트 사원에서 자비명상을 접한 적이 있는데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죠. 한국에 돌아와서 자비명상을 배울 곳이 있다는 게 굉장히 반가웠어요. 영어에도 관심이 있어서 제겐 더없이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명상을 하고 있는데 잘하고 있는 건지 몰라서 제대로 배우기 위해 왔다는 참가자도 있었고, 용수 스님에게서 느껴지는 좋은 에너지 때문에 왔다는 가톨릭 신자도 있었다. 나이도 강의에 참석한 이유도 저마다 달랐지만, 명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가꾸어나가겠다는 의지는 같았다. 용수 스님은 행복을 찾고자 명상을 배우려는 사람들을 위해 현재 매주 수요일마다 돈암동 풍경소리 학교에서 영어명상 강의를, 토요일에는 안국동 불교영어도서관에서 명상 기초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여름과 겨울에는 각각 1주일간 남양주 봉인사에서 집중수행과정을 연다.
특별한 말과 행동 없이도 만나는 순간 평안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존재만으로 자비로움을 전할 수 있는 사람. 영어명상강의에서 만난 용수 스님의 평화로운 존재감은 어떤 설명보다도 강력하게 평화를 전염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 힘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수행을 통해 닮고 싶은 모습이 아닐까. 강의가 끝나고 소감을 묻자 한 참가자가 이렇게 반문했다. 
“말로 할 것이 있나요?”
그의 의문형 대답처럼 말이 아닌 존재로, ‘함’이 아닌 ‘쉼’으로 마음의 자비로운 본성을 맛보고 싶다면 용수 스님의 영어명상강의에 ‘생각하지 말고 그냥’ 찾아가는 것도 좋겠다. 저절로 되는 영어 공부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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