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 하나라도 온전하게 먹는 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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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 하나라도 온전하게 먹는 절집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6.02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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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고운사 사찰음식

“강원도 청년이 여기 놀러왔다가 머리를 깎았어요. 33년 전에. 극락전에서 천일기도를 하는데 부처님법이 너무 좋아서, 행복해서 잠이 안 왔어요. 어느 날 밥을 먹는데 뭐가 드르륵 씹혀요. 너무 추워 이가 다 얼어서 빠진 거지요.”  

| 무청 시래기가 대접받는 절 
그렇게 고운사로 출가한 지 25년 뒤 호성 스님은 주지가 되었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이 심각해요. 믿을 수 없으니 얼마나 괴로워요. 그래서 먹는 일이 행복하게, 밥상에 앉아서 모두가 웃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게 내 뜻이에요. 그게 바로 불국토가 아닐까요?” 
의성 고운사. 조계종 본사이고 1,300년 된 고찰이지만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길을 따라 계곡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산문을 지나 천년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의상 대사가 창건하고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중건해, 그때부터 최치원의 호를 따 ‘고운사’가 되었단다.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조금 걸어 올라가면 ‘고운사 청국장’을 알리는 노란색 플래카드가 눈길을 잡아끌고 그 곁에 최치원이 지었다는 가운루와 계곡 건너 우화루가 보인다. 
계곡 위에 돌을 박고 그 위에 세운 집이 신기해 눈길이 가운루에 박힌다. 동쪽은 탁 트인 정자이고, 나머지 남·서·북쪽은 나무문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구조다. 가운루가 바라보는 동쪽에는 소나무만으로 된 동그란 산 등운산이 그림처럼 솟아있다. 대들보를 보러 고개를 드니 세상에나! 그 넓은 천정에는 무청 시래기가 곱게 걸려있다. 시래기가 이렇게 대접받을 수가. 농사짓는 나도 이렇게는 못하는데…. 고운사가 먹을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듯했다. 고운사에는 사찰음식체험관이 있을 만큼 사찰음식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호성 스님께 어떻게 사찰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여쭈어 보았다. 
“여기 의성은 화산지대이다 보니까 뭐든지 심으면 잘 돼요. 이걸 활용해야 되잖아요. 지난해 의성 콩을 100가마 사 가지고, 50가마는 메주를 띄워 장을 담갔어요. 나머지 콩으로 지금도 청국장을 띄우지요. 묵은지도 5,000포기 했어요. 젓갈을 안 넣은 사찰김치는 3년을 묵어도 아삭아삭해요. 농가와 계약재배를 해서 믿고 먹을 수 있는 행복한 먹을거리를 만들어 고운사 이름으로 공급하는 겁니다. 지역과 하나 되는 그런 계획 가운데 사찰음식이 있는 거지요.”

| 장작불로 구들방에 띄운 청국장 맛
‘사찰음식’ 그러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귀한 산채나 버섯. 보기에는 근사하지만 일반인들 밥상에 오르기 쉽지 않다. 한데 고운사 사찰음식은 그 흔한 콩을 주제로 한 간장, 된장, 청국장 그리고 우리네 밥상에 빠질 수 없는 김치에서 시작한다니…. 
‘콩’ 그러면 나도 할 말이 좀 있다. 귀농해 손수 농사지은 걸 먹으면서 보고 또 봐도 중요한 게 콩이더라. 그래서 어설프지만 해마다 메주를 쑤고 장을 담근다. 그리고 하루 한 가지씩 콩 음식을 밥상에 올리려 한다. 된장찌개, 콩장, 콩국, 비지는 물론이거니와 밥에도 콩을 놔먹는다. 완두콩으로 시작해 초여름에 먹을 수 있는 두벌강낭콩, 가을에 온갖 콩이 여물면 풋콩팥을 따서 먹고, 겨울에는 집안에서 콩나물과 숙주나물을 길러먹는다. 이웃의 축사들을 보면 고기를 먹는 건 GMO 수입 사료를 먹는 셈이고, 바다가 온갖 유해물질에 이어 방사능으로까지 오염되니 생선에도 손이 덜 간다. 그러니 식구들 건강을 위해 가장 안전한 단백질 공급원인 콩(물론 수입 콩이 아니라 우리 콩)과 늘 함께 하려 한다.   
고운사에서도 직접 농사를 짓는다며 호성 스님께서 농사 자랑을 하신다. 지난해 돼지감자를 2,000평 심어 1년 만에 캤는데 알이 주먹보다 컸단다. 의성 땅이 농사에 좋다더니 정말인가보다.  
“돼지감자를 보면 생명력이 대단해요. 불성을 보는 듯해요. 누구나 다 부처다, 이걸 일깨워 주고 싶어요. 참선할 사람은 참선하게 하고, 그게 안 맞는 사람에겐 음식으로 말이지요. 앞으로 된장을 항아리째 분양할 생각이에요. 필요할 때마다 떠다 먹으라고. 된장이 필요하면 그때마다 오고 부처님도 뵙고 얼마나 좋아요.” 
고운사는 무쇠솥에 장작불을 때서 메주 청국장을 끓이고 그걸 구들방에서 띄운단다. 우리가 차담을 나눈 만덕당 뒤 공양간 가는 길목에 장작을 쌓아놓았는데 그게 바로 구들방에 불 때는 장작. 지난해 메주 무게에 눌려 구들이 꺼지는 일이 생기기도 했단다.
여기서 잠깐, 구들방을 아시는지?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면 방바닥이 납작한 돌로 되어있어 한번 달궈지면 24시간은 너끈히 따끈따끈하다. 불길이 드는 길목인 아랫목은 뜨겁고 불길이 거의 안 가는 윗목은 서늘해, 아랫목에 발을 묻고 윗목에 머리를 대고 누우면 금상첨화다. 아랫목 윗목이 따로 없는 보일러 방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그걸 어찌 아느냐고 물어주시면 우리집 안방이 구들방이라고 자랑하고 싶다. 고운사 구들방도 메주, 청국장을 안 띄울 때는 법회 오신 보살님들 등지지는 데 쓰인단다.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든 된장 맛은 어떨까? 유사 이래 이렇게 먹을거리가 넘치는 세상이 또 있었을까. 그런데도 어딘가 헛헛하다. 산해진미를 먹는다고, 냉장고 가득 먹을거리를 채운다고 그 헛헛함이 사라지지 않더라. 왜 그럴까? 마구 내달리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본다. 먹을거리 하나하나에 온전한 기운이 담겨있지 않아서는 아닐까! 이것저것 욕심껏 먹을 수도 있겠지만, 작은 거 하나라도 온전하게 먹을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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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일 벗는 고운사의 사찰음식
호성 스님과 차담을 나눈 뒤 소나무 숲길을 살살 걸어 내려가 들머리에 있는 사찰음식체험관으로 갔다. 솔숲에 깽깽이풀, 노루귀 같은 산야초가 저 알아서 올라오고 토종벌이 꽃 찾아 날아다닌다. 체험관 옆에는 장을 띄우는 구들방으로 된 초가가 있는데, 들여다보니 청국장이 이불을 곱게 덮고 누워있다. 그 뒤로 대형 가마솥 5개가 걸린 솥 집이 있다. 
솥 집에서는 사찰음식체험관을 책임지고 있는 지담 스님이 한창 두부를 만드는 중이다. 콩을 물에 불린 뒤 곱게 갈아 가마솥에 설설 끓이고, 그 뜨거운 걸 베주머니에 넣고 짜서 콩물을 받아내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 땀을 흘리신다. 가마솥 아궁이에서 활활 타는 장작불처럼. 
콩물을 다 짜내고는 다시 그걸 가마솥에 넣어 온도를 올리는데 침이 꼴깍 넘어간다. 나는 두부, 순두부보다 바로 이 콩물인 두유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농사지은 콩으로 처음 두유를 만들어 먹었을 때, 그 감동이란…. 세상에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깨끗한 음식이 있나! 그동안 사먹은 두유에 속은 기분이었다. 
아궁이 불문을 열어 콩물을 잠깐 데운 뒤, 간수를 넣어 콩단백이 엉기게 한다. 하나 둘 셋… 이렇게 숫자를 세는 마음 급한 사람 숨넘어가기 딱 좋을 만큼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몽글몽글 순두부가 엉기기 시작이다. 아, 맛있겠다!
순두부를 한 냄비 떠서 들고 지담 스님과 체험관에 갔다. 체험관에는 교육실, 숙성실, 차 덖는 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다. 여기 사찰음식체험관만이 아니라 안동청소년문화센터에도 사찰요리교육과정을 열고 있단다. 
자그마한 키에 우윳빛 피부를 가진 지담 스님은 대안 스님 밑에서 사찰음식을 배웠단다. 지금은 고운사 사찰음식체험관을 담당하고 있다. 입보다는 손이 더 부지런한 스님이라 이야기보다는 스님 동선을 뒤따라다니기 바빴다. 주지 호성 스님이 그려나가는 사찰음식은 지담 스님 손에서 하나하나 만들어지고 숙성되어 가겠지! 고운사만의 사찰음식 이야기 총연출자인 호성 스님의 말씀처럼.
“고운사는 본사이면서도 고즈넉한 사찰이지요. 그동안은 베일 속에 숨어있었는데 앞으로 드러날 거예요. 준비는 90% 되었어요. 이제 기다리면 돼요.” 
장이 제대로 발효 숙성되려면 3년은 걸린다. 아무리 빨라도 1년은 지나야 한다. 의상 대사께서 창건한 화엄도량 고운사. 이 원대한 화엄계획 아래 3년이란 시간은 얼마쯤의 길이일까. 우리는 지금부터 그게 드러나기를 기다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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