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우리네 인생정리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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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네 인생정리는 끝났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6.0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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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 삶보다는 가끔은 주목받고 싶었다. 
더러는 재물과 명예를 
갈망하기도 했고,
사람이 그리워서 
이 길을 포기하려고도 했다. 
서서히 알게 되었다.
살면 살수록
욕망도 나이 먹는다는 것을.
그리움 또한 늙어간다는 것을.
이제 내게 남은 건 
모두와 함께하는 따뜻한 미소 
아름다운 마음뿐이라는 것을.


| 말없이 응답해주는 그분을 생각한다
“원영 스님은 참 사람 꼴 잘 본다. 부럽다.” 
모처럼 찾아온 도반이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났다.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마음 훈훈해지는 덕담인 것만은 분명하다. 간만에 반가운 도반들을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니 옛 생각이 났다. 그 기억은 ‘내가 예전에 어땠었더라? 예전에 내가 가장 간절하게 기도한 적이 언제였지?’ 하는 의문으로 이어졌고, 곧 몇 번의 방황과 함께 추억은 연기처럼 스멀스멀 나를 타고 올라왔다. 특히 삶의 방향을 두고 진지하게 헤매던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는 오래 되어 특별한 일 아니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 운문사 시절의 일이다.
승가대학 4년을 보내고 나면 스님들은 각자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다. 선방에 갈지, 대학에 갈지, 아니면 본사로 돌아가 절일을 도울지 선택하는 시기다. 일반 사회의 대학 졸업반과 어쩌면 유사한 느낌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졸업반이라면 누구나 시도 때도 없이 이 문제로 고민하니까 말이다. 반면, 당시 나는 내면에 더 근원적인 갈등을 겪고 있었다. ‘내 나이 27. 과연 수행자의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인가.’ 하는.
모두가 생각하는 출가자의 아름다운 모습은 늘 이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현실은 매번 이상을 배반하는 듯했다. 그래서 기도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반에서 몇 명 스님이 절 기도를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2학년 때 ‘퇴행성 무릎관절염’으로 보름간 병가를 낸 적이 있다는 이유로 가까운 도반들이 뜯어말렸다. 허나 마음의 아픔은 육신의 아픔 아래에 있지 않았다. 강의가 끝나면 나는 경내 가장 작은 법당으로 향하곤 했다. 거기서 공양 전까지 죽어라 절만 했다. 무릎이 부서진다 한들 타오르는 열정을 거둘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문제였으므로.
하루에 천 배씩 계속되는 절은 얼마 안 되어 만 배가 되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2만 배가 되었다. 삼칠(21)일간 하루 천 배의 절은 계속되었다. 그 사이 나는 울었다. 땀범벅이 되어 울었다. 아무리 물어도 부처님의 응답이 없어 울었고, 무릎이 아파서 울었으며, 외로워서 울었다. 내 인생이 가여워서 울고 또 울었다. 그러나 내 미래에 대한 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절 기도는 끝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 이상하게도 모든 일에 대해 덤덤해졌다. 스스로 느끼기에 표정도 조금은 진중해졌다고나 할까? 그냥 아무 걱정 말고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나머지는 인연 따라 흘러가겠지 싶었고, 알 수 없는 당당함이 생겨나는 것 같더니 삶에 대해 태연해지고 무심해져버렸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자기애가 강한 사람인지 그때 처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살아가면 훨씬 더 조심할 수 있으니까 그나마 다행스런 일깨움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출가자로 살다보면 몇 차례 큰 고비를 맞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가 보다. 그 고비고비마다 기도의 힘을 빌지 않는다면 아마 망망대해에 홀로 남은 듯 한계상황을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때의 그 기도 덕분인지 어쨌든 나는 지금도 담담하게 그분을 생각한다. 말없이 응답해주시는 나의 부처님을, 그리고 우리 모두의 부처님을. 

| 인생이란, 그리고 늙음이란
며칠 전 사회복지재단 자원봉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 있었다. 당연히 30·40대가 오겠지 생각하고 강연준비를 해간 나는 강연장에 들어서며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이 모두 평균 연령이 60·70대는 되어보였기 때문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준비해간 강연내용은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골몰하다가 그냥 떠오르는 대로 어르신들에 맞춰 강연을 진행하기로 했다. 
연세들이 높다보니 자연스레 부모님 얘기가 흘러나왔다. 다행히 울고 웃으며 어르신들께서 호응해주셨다. 강연이 끝나갈 무렵, 그분들에게 나는 진지하게 부탁드렸다. 좀 더 당당하게 사시라고, 그만큼 애쓰면서 사셨으면 이제 자식 눈치 안 보셔도 된다고 말이다. 어르신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강연장에는 잠시 차고 숙연한 기운이 퍼졌다. 어쩌면 외로움에 갇힌 짧은 침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나도 이삼십 년 뒤에는 저렇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그렇게 잠시잠깐 안쓰럽다 여겼을 뿐인데, 객석을 둘러보는 내 눈도 어느새 토끼눈이 되어버렸다. 
강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다 다시 한 번 인생을 생각했다. 늙음과 무상을 되뇌었다. 그랬더니 무심코 옛날에 읽었던 『노인과 바다』가 떠올랐다. 늙은 어부가 오랫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먼 바다로 나가 큰 고기를 잡아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헤밍웨이의 소설 말이다. 결국 큰 물고기를 낚기는 했는데, 끌고 오는 도중 상어 떼를 만나 사투를 벌이다가 상어에게 고기를 다 빼앗기고, 앙상하게 남은 뼈만 끌고 돌아온다는 바로 그 유명한 소설 말이다.(고등학교 때 읽었는데, 그땐 지루해 죽는 줄 알았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다. 여든 날하고도 나흘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다. 처음 사십 일 동안은 소년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사십 일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그에게 이제 노인이 누가 뭐래도 ‘살라오’가 되었다고 말했다. ‘살라오’란 스페인 말로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소년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다른 배로 옮겨 타게 되었는데, 그 배는 첫 주에 큼직한 고기를 세 마리나 잡았다. 소년은 날마다 노인이 빈 배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 『노인과 바다』(민음사) 중에서 
어르신들을 뵙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란 게 이런 것일까? 결국 누구에게든 다 빼앗기고 빈손으로 돌아가고 마는. 늙음이란 게 이런 것일까? 열심히 살았던 젊은 날의 상처가 고스란히 자존심으로 남게 되는. 세상의 많은 이들이 행운아라기보다는 ‘살라오’에 더 가깝지 않을까?’ 잡다한 속생각에 입이 썼다.

| 그렇게 살기만 하면 될 뿐이다
우리 모두는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내 스승에게 있어 난 제자지만, 내 제자에게 난 스승이고, 누군가에게는 도반이다. 부처님도 그러셨을 것이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는 부모, 부모에게는 자식, 아내에게는 남편이 된다. 또 누군가에게는 상사가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부하직원이 되며, 누군가에게는 동료가 된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고 역할이다. 그리고 늘상 시달리며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는 이 모든 역할들을 다 해내야만 하는 상황이기에 우리는 어느 한 모습만을 고집할 수도 없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이 돼서야 돌아오며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이 동시에 행해야 할 일들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어느 작은 마을에 물살이 너무 세서 건너기 힘든 개천이 하나 있는데, 그곳 사람들은 강을 건널 때마다 큰 돌을 등에 지고 건너간다고 한다. 그래야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건널 수 있기 때문이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구나 하고 납득이 간다. 현명한 방법이다. 비유하자면 인생을 살면서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수많은 짐들도, 이와 같이 경우에 따라서는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인생을 잘 살아낼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 인생에 지름길은 없다.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일 수도 있고, 지름길이라 믿었던 길이 돌아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더러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 더러는 펄쩍 뛸 만큼 기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시련이 닥쳤을 땐 눈물 젖은 기도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음을 추스르며, 기쁜 일엔 감사의 기도로 겸허함을 익히곤 한다. 그리고 많은 날들을 서로 사랑하며 우리는 행복해지기를 기원한다. 
지나간 일들을 걱정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 때문에 불안해 할 것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충실히 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 한마디에 이미 우리네 인생정리는 끝났다. 이제 그렇게 살기만 하면 될 뿐이다. 자신을 한번 믿어보자. 내가 날 믿지 않는데, 누가 날 믿겠는가. 나는 그저 먼 훗날 늘그막에 인생길을 정리할 무렵, 그때 가서 너무너무 에돌아왔다고 말하는 일만큼은 없기를, 희망할 뿐이다. 

원영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아사리(계율과 불교윤리 분야). 운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선원 안거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2008년 「대승계와 남산율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대승계의 세계』, 『계율, 꽃과 가시』 등이 있다. 현재 BBS불교방송 ‘아침풍경’을 진행하고 있으며, 중앙승가대학교 외래교수로서 강의와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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