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란(紫蘭)과 청란(靑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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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란(紫蘭)과 청란(靑蘭)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6.0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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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바이 만세 여성불자 만세

자란(紫蘭)과 청란(靑蘭)

동봉스님

 

왕건(王建 ; 877~943)은 고려의 제 1대 왕으로 918년부터 943년까지재위하면서 국토통일과 민족의 화합, 불법흥륭에 온 힘을 기울인 사람이다.  금성태수 왕융을 아버지로 위숙왕후 한 씨를 어머니로 태어난 고려태조 왕 건은 신라 진성여왕 9년(895)아버지를 따라 미륵불교의 대성자였던 궁예의 휘하에 들어가 공을 세우게 되는 것을 시작으로 그이 앞길은 훤히 열리게 된다.

 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궁예다. 그는 궁예로부터 미륵불교를 배운다. 미륵불교사상은 사랑과 평화요, 그 교단의 구성요소는 민중을 바탕으로 한다. 나중에 궁예를 배신하여 스스로  하극상(下克上)의 부도덕함을 자행하면서 왕위에 오른다. 물론 거기에는 궁예를 모함하고 그의 지위를 약탈해야만 가능했다. 궁예는 위대한 통치자였다.

역사에 기록된 것과는 정반대로 깨끗한 정치인이었으며 정말 국민을 사랑할 줄 아는 그러한 사람이었지만 왕건의 치밀한 작전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하여간 왕건은 궁예의 터전을 가로채 왕위에 올라 국호를 ‘고려’라 하고 연화를 천수(天)라 정한 뒤 송악으로 도읍을 옮긴다. 기록에는 궁예가 인심을 잃자 홍유, 배현경과 함께 궁예를 치고 왕위에 올랐다고 되어 있다.

 그는 융화정책, 북진정책, 숭불정책으로 건국의 이념을 삼아 지방의 호족들을 회유 무마하는 한편 서경(西)을 개척하고 여진을 공략했으며 불교를 호국신앙으로 삼아 전국 각처에 절을 지었다.

 935년에는 망명해온 신라의 경순왕을 평화적으로 받아들였고 신라를 합병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앞서 항복해 온 견훤(후백제의 왕)과 함께 후백제를 쳐 멸망시키고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시켰다.

 그러나 그는 바람둥이였다. 궁예가 민중의 편에 서서 민중들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왕건은 권위의식에 젖어 서민 백성들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특히 나라의 젊은 여성들에 대한 왕건의 권위의식과 남성으로서의 우월의식은 가히 기고만장이었다.

 그가 만년에 젊어서의 방탕을 뉘우침이 없었다면 그는 한 나라를 만년대계로 이끌어갈 자격조차 없었던 사람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왕건에게는 총애하는 가신이 있었다. 김행파(金行波)였다. 행파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큰딸은 자란(紫蘭)이고, 둘째딸은 청란(靑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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