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사는 거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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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사는 거 재미있겠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4.0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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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불교의 관계는 숨 쉬듯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사실 그 시작에 대한 기억을 더듬자면 딱히 잡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하자면 자못 당황스럽다. 어린 시절 부산에 있는 큰댁에 가는 날엔 통도사나 해인사를 둘러보았고, 경북 영주에 있는 외가에선 희방사나 부석사에 들러 외할머니를 따라 두 손 모아 허리 숙여 인사를 해보았던 것도 같다.
기억을 떠올려 본다. 내가 마음 모아 두 손 모아 처음으로 기도하던 때를. 항상 고운 목소리로 “우리 연주 왔나!”라며 만날 때마다 가슴 속에 내 얼굴이 푹 파묻힐 정도로 꼭 안아주시던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내가 공 씨 집안에 시집을 가 낳은 아이를 안고서 “공자 왈~ 맹자 왈~ 그 귀~한 공자님이 오셨나!”라며 아이를 유쾌하게 어르시곤 했다. 또 이별을 예감하셨던 것인지 외할아버지 생신잔치에 모인 자식들에게 일일이 덕담을 들려주시며 포근한 손길을 나눠주셨다. 그리고선 일주일 후 너무도 평안히 생을 마감하셨다. 그런 외할머니를 보내 드릴 때였다.
외할머니와의 이별이 믿기지 않아 엉엉 울고 있는 나를 감싸 안으며, 당신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하면서도, “몸 바꾸실 때 알고 잘 가신 거니까 괜찮아.”라며 달래고 또 달래주던 우리 엄마. 그 뒤로 익숙한 불상들과 경건한 법당의 모습들이 보였다. 그때 그 공간의 기운이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도록 도와주었다.
이제 생각은 우리 엄마를 외할머니로, 내 남편의 엄마를 할머니로 부르며 자라나는 내 아이들에게로 흘러간다. 방송 일에 매달려 제 앞가림도 하기 힘든 엄마를 둔 우리 아이들은 할머니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며 성장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 아이들은 세상에 나오던 순간부터 할머니의 합장하는 고운 손을 먼저 만났던 아이들이다. 옹알이를 하며 방긋거리는 눈을 마주보면서 불경의 좋은 말씀을 조곤조곤 들려주시던 할머니의 음성을 들으며 자라난 아이들이다. 곧게 앉아 사경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크고 있는 아이들이다.
이제는 아이들도 제법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몸도 마음도 훌쩍 커버렸다. 언제인가 아이들이 그들의 외할머니와 나누던 대화를 모처럼 듣게 되었다. 남해 오곡도에 있는 명상수련원을 자주 찾는 외할머니에게 참선이 그렇게 재미있냐고, 부처님이 좋으냐고 물어본 모양이었다. 좋은 스승을 만나 교리도 해박해지고 명상을 통해 나날이 맑은 얼굴로 더욱 소녀 같아진 우리 엄마이자 아이들의 외할머니는 이렇게 당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내가 생각하기에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 같아. 살면서 이런 거 저런 거 알게 되는 거 있지? 불교는 그런 깨달음을 많이 공부하게 해줘서 외할머니는 좋아. 부처님은 그렇게 깨달음에 도달한 성인이니까 아주 존경하고.” 이어지는 아이들의 ‘돌직구’ 같은 질문. “그래서 참선하면서 뭐 깨달았는데요?”
이에 아이들의 외할머니는 당신이 물처럼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바가지에 담기면 그 모양대로, 좋은 그릇에 담기면 또 그런 모양대로. 좋고 나쁜 거 분별해서 집착하지 않고, 좋으면 좋은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그대로 하나가 돼서 살고 싶다고 알듯 모를 듯 대답을 주신다.
“물처럼 사는 거 재미있겠다!”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외할머니의 얘기 끝에 아이들이 그야말로 명쾌하게 덧붙인 말이다. 곱씹어 보니 묻는 사람도 답하는 사람도 참으로 나와 귀한 인연으로 맺어진 커다란 존재라는 생각이 물씬 밀려온다. 참 감사한 일이다. 불교와의 인연 속에서 자연스레 나의 엄마와 또 그 엄마의 엄마가 떠올려지는 것이나, 내 아이들 또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렇게 좋은 가르침 속에서 잘 자라고 있는 것이나 모두 다.
생각은 흐르고 흘러 우리 아이들이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그때로 앞서 가본다. 그들이 혹시 지금 이 순간의 나처럼 불교와의 인연을 생각해 볼 기회가 생긴다면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와 도란도란 나누었던 이야기들, 아빠의 엄마인 할머니 손을 잡고 자주 산책했던 집 근처 길상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 싶다. 그리고 지금의 나처럼 아이들 또한 이 소중한 인연들에 감사하며 또 다른 인연들을 소중히 만들어 나가리란 기대도 함께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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