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채운 돌 자물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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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채운 돌 자물쇠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4.0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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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등명낙가사

오늘은 네 번째 기항지인 강릉 등명낙가사 가는 날. 오늘의 길에서 나는 또 어떤 나를 새롭게 만날까? 어떤 새로운 나를 조우하게 될까? 길 떠남은 매번 새롭다. 매번의 길 떠남이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오늘은 과연 내가 어떤 나를 새롭게 창조할지, 어떤 새로운 내가 창조될지 매번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오늘도 나는 분명 새 길에서 새 사람들을 만나고, 새 사건들을 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사건과 사람들 속에서 숙세의 나의 이숙식(異熟識, 불교의 유심론에서 말하는 인간의 근본 의식으로 제8아뢰야식이라고도 하며, 선업과 불선업이 다르게 익어서 나타난 이숙과이기 때문에 이숙식이라고 한다)들을 만나고, 마침내 익고 익은 그 ‘이숙식’들이 새로운 인연과 인과로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 닭 벼슬만도 못한 나의 중 벼슬이여

새벽 일찍 여장을 꾸린 나는 강릉 동부시장 시내버스정류장으로 나갔다. 등명낙가사행 첫차를 타기 위해서였다. 첫차는 아침 6시 55분에 있었다. 정동진행 111번, 111-1번, 112번, 113번 네 종류였다. 그 가운데 하나를 타면 되는데, 그 중에서 112번 시내버스가 가장 먼저 다니고 가장 많이 다니고 가장 늦게까지 다녔다. 아침 6시 반이 넘었는데도 시린 북극성은 더욱 시리게 빛났다. 한 겨울인 탓이다. 여명을 싣고 드디어 112번 첫차가 왔다. 이른 시간인데도 버스 안은 승객들로 만원이다. 군인들도 많이 탔다. 동해안 철책을 지키는 군인들이다. 부산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 이어지는 7번 국도는 여기서도 계속된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아침 7시 뉴스가 흘러나온다. 국정원 개혁특위가 어떻고, 특검이 어떻고, 장성택 북한국방부위원장이 어떻고, 삼성가 상속재판 선고가 어떻고…. 듣기 좋은 뉴스는 하나도 없다. 아, 사랑하는 나의 조국, 백의白衣의 나의 조국, 배달의 나의 조국은 언제나 다시 백의의 나의 조국, 배달의 나의 조국으로 되돌아가려나. 언제나 정치판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북풍 소식은 가슴 차갑게 하지 않으려나. 가난한 우리 국민들 재벌가 재산다툼 놀음에 가난한 마음 더 가난해지지 않을까나. 이럴 때마다 정말 출가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 벼슬 닭 벼슬만도 못하다’고, 나에겐 다퉈야 할 권력도, 동상 걸릴 북풍도, 조상 욕되게 혈육상쟁 해야 할 재산도 없잖은가. 이보다 더 큰 자유와 행복과 평화와 지복한 해탈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뉴스의 생리는 하이에나 같다. 싱싱하고 좋은 음식은 놔두고 악취와 구린내가 진동하는 썩은 고기만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뉴스는 어쩌면 하이에나 같은 인간의 생리욕을 채워주기 위해 썩은 것, 구린 것, 악취가 진동하는 것들만 좇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 나도 그랬으니까. 썩은 것, 구린 것, 악취가 진동하는 것들만 쫓아다녔던 신문기자였으니까. 실제로 사람들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따스한 인간 냄새가 나는 뉴스에는 별 관심이 없다. 무엇인가 구린내가 나고(심하게 날수록 더 좋고), 악취가 진동하고, 썩은 냄새가 펄펄 끓는 뉴스라야 별 관심을 갖고 보고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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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옥계장터에서 만난 정겨운 풍경과 순박한 사람들.
다음날 아침, 첫차를 타고 등명낙가사로 향한다.

| 500개의 눈과 500개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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