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그늘] 꽃항아리에 담긴 사연 / 한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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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그늘] 꽃항아리에 담긴 사연 / 한상열
  • 한상열
  • 승인 2007.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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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그늘

 진학 지도실 내 책상 위에는 앙징스럽다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먼 중옹의 항아리 하나가 놓여 있다. 이런 항아리와는 어딘지 걸맞지 않는 듯한 60여 송이의 카네이션과 안개꽃이 그득 담겨 있다. 항아리와 카네이션의 조화, 파격적이긴 하지만 보면 볼수록 그럴듯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처음 예의 이 항아리가 내 책상에 놓였을 때는 교무실 분위기와는 전혀 이색적이고 파격적이어서 모두들 입을 벌렸고, 그 다음에는 「문학하는 선생님 책상답다.」는 말로 부러운 눈빛을 띄우기도 했다.

이 꽃송이들이 나에게 큰 의미를 띠고 있는 것은 꽃만이 가진 외적인 아름다움 자체 때문이 아니요, 그 속에 담겨 있는 애틋하고 정겨운 아름다운 사랑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는 진학지도실이란 곳이 교실 한 칸을 사용하는 곳이어서 넓기는 하지만, 더욱 공허하고 쓸쓸하기 그지 없다. 더구나 북쪽으로 돌아앉은 방이라서 종일토록 햇볕 한 점 드는 일이 없는 까닭에 나는 늘 음지식물 모양 떨면서 한겨울을 지내야 한다. 봄이 오고 생명이 움트는 계절을 맞이했건만 을씨년스럽고 눅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정이기에 내 책상 위에 놓인 꽃항아리는 그야말로 계절의 여왕다운 품위와 자태로 습기가 눅눅했던 분위기를 변화시키기에 남음이 있었다.

 어떻던 나는 이 항아리를 신주단지 모시듯 소중히 다루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단지요, 정성이 담겨진 항아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항아리에 담겨진 사랑만큼이나 사랑스럽다.

 나에게 어느덧 피로가 쌓이기 시작, 4월이 가고 5월로 접어들어 부쩍 심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하루하루  살얼음판 위를 걷듯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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