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죽도암・휴휴암 : 하늘과 바다 사이
상태바
양양 죽도암・휴휴암 : 하늘과 바다 사이
  • 승한 스님
  • 승인 2014.03.22 0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비같은 죽도암, 미역보살 맞아주는 휴휴암

다음 기항지는 죽도암. 죽도암은 홍련암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직행버스로 30분 정도 남진하면 있다. 낙산시외버스정류장에서 인구행 직행버스를 타면 된다. 죽도암은 죽도竹島에 있어 죽도암竹島庵이다. ‘대나무의 섬’답게 죽도에는 대나무가 많다. 대나무 중에서도 화살대 만드는 데 쓰는 전죽箭竹이다. 낭창낭창하다. 저 낭창낭창한 회초리로 어렸을 때 퍽이나 맞았다. 그때부터 나는 문제아였나 보다. 그래도, 그립다.

 

| 붉은 오징어 대가리

헌데, 회초리보다 더 나를 반겨주는 것이 있다. ‘붉은 오징어 대가리’다. 죽도 초입, 작은 병풍바위에 누군가가 빨간색 페인트로 사람 크기만 한 크기로 그려놓았다.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치뜬채 여덟 개의 발가락을 흐느적거리며 하늘로 헤엄쳐 오르는 ‘붉은 오징어 대가리’라니. 맨 왼쪽 발엔 ‘죽도암’을 감고 있고, 맨 오른쪽 발엔 ‘죽도정竹島亭’을 감고 있다. 왼쪽으로 가면 죽도암이라는 표시고, 오른쪽으로 가면 죽도정이라는 표시다. 동해와 오징어와 바다와 대나무 숲의 조합. 누구의 발상일까. 기발하고 즐겁다. 프로의 상상력이다. 그 탓이리라. 지나치는 죽도 사람들이 모두천재예술가로 보인다.

오징어 왼쪽 발을 따라 2분 정도 해안을 돌면 드디어 오늘의 첫 번째 기항지인 죽도암. 그런데 실망하지 마시라. 죽도암엔 달랑 전각 한 채밖에 없다. 그러나 더 놀라지 마시라. 죽도암엔 어느 절집보다 더 풍성한 기품이 있다. 그 기품은 죽도를 등에 업고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바다를 향해 단정히, 정면으로 나앉은 관음전에서 우러나오고 있다.

이 대목에서 비교미학 한 토막. 홍련암이 조선 의기義妓 ‘홍련’처럼 절제되면서도 풍성한 관능미가 느껴지는 바닷가 절집이라면, 죽도암은 곤궁하지만 곤궁하지 않은 조선 선비 같은 기개와 품격이 느껴지는 바닷가 절집이다.

 

| 부처님, 어디 가슈?

관음전 앞마당으로 내려서자 부처님 세 분이 바로 발 앞 바다에 누워계신다. 아미타부처님과 좌우 관세음・지장 양대 협시보살 같다. 파도가 썰면 나타났다 파도가 밀면 되돌아가시는 삼존三尊 부처님들. 그런데 가만 보니 누워 계시는 게 아니라 누워서 걸어가고 계신다. 도란도란, 다정하게, 손 맞잡고, 파도 따라, 하염없이, 흘러가고 계신다. 정초부터 어드메로 길 떠나시는 걸까? 궁금증을 참지 못해 불경죄를 저지르고 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마침 초하룻날이다.

“부처님, 부처님, 우리 부처님, 부처님 한번 뵈려고 불원천리 서울에서 달려왔는데 초하룻날부터 어딜 그렇게 바삐 마실 나가슈?”

“예끼, 네 놈 같은 땡추가 상관할 바 아니다!”

“아니, 여보슈. 멀쩡한 중을 왜 땡추라 하슈!”

“네 놈 스스로 그 뜻을 알렸다!”

이키, 부처님 눈은 속일 수 없다. 벌써 내 불경죄를 알아채셨다.

“어이쿠, 부처님. 잘못했습니다. 한번만 눈감아주슈.”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