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기항지는 죽도암. 죽도암은 홍련암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직행버스로 30분 정도 남진하면 있다. 낙산시외버스정류장에서 인구행 직행버스를 타면 된다. 죽도암은 죽도竹島에 있어 죽도암竹島庵이다. ‘대나무의 섬’답게 죽도에는 대나무가 많다. 대나무 중에서도 화살대 만드는 데 쓰는 전죽箭竹이다. 낭창낭창하다. 저 낭창낭창한 회초리로 어렸을 때 퍽이나 맞았다. 그때부터 나는 문제아였나 보다. 그래도, 그립다.
| 붉은 오징어 대가리
헌데, 회초리보다 더 나를 반겨주는 것이 있다. ‘붉은 오징어 대가리’다. 죽도 초입, 작은 병풍바위에 누군가가 빨간색 페인트로 사람 크기만 한 크기로 그려놓았다.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치뜬채 여덟 개의 발가락을 흐느적거리며 하늘로 헤엄쳐 오르는 ‘붉은 오징어 대가리’라니. 맨 왼쪽 발엔 ‘죽도암’을 감고 있고, 맨 오른쪽 발엔 ‘죽도정竹島亭’을 감고 있다. 왼쪽으로 가면 죽도암이라는 표시고, 오른쪽으로 가면 죽도정이라는 표시다. 동해와 오징어와 바다와 대나무 숲의 조합. 누구의 발상일까. 기발하고 즐겁다. 프로의 상상력이다. 그 탓이리라. 지나치는 죽도 사람들이 모두천재예술가로 보인다.
오징어 왼쪽 발을 따라 2분 정도 해안을 돌면 드디어 오늘의 첫 번째 기항지인 죽도암. 그런데 실망하지 마시라. 죽도암엔 달랑 전각 한 채밖에 없다. 그러나 더 놀라지 마시라. 죽도암엔 어느 절집보다 더 풍성한 기품이 있다. 그 기품은 죽도를 등에 업고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바다를 향해 단정히, 정면으로 나앉은 관음전에서 우러나오고 있다.
이 대목에서 비교미학 한 토막. 홍련암이 조선 의기義妓 ‘홍련’처럼 절제되면서도 풍성한 관능미가 느껴지는 바닷가 절집이라면, 죽도암은 곤궁하지만 곤궁하지 않은 조선 선비 같은 기개와 품격이 느껴지는 바닷가 절집이다.
| 부처님, 어디 가슈?
관음전 앞마당으로 내려서자 부처님 세 분이 바로 발 앞 바다에 누워계신다. 아미타부처님과 좌우 관세음・지장 양대 협시보살 같다. 파도가 썰면 나타났다 파도가 밀면 되돌아가시는 삼존三尊 부처님들. 그런데 가만 보니 누워 계시는 게 아니라 누워서 걸어가고 계신다. 도란도란, 다정하게, 손 맞잡고, 파도 따라, 하염없이, 흘러가고 계신다. 정초부터 어드메로 길 떠나시는 걸까? 궁금증을 참지 못해 불경죄를 저지르고 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마침 초하룻날이다.
“부처님, 부처님, 우리 부처님, 부처님 한번 뵈려고 불원천리 서울에서 달려왔는데 초하룻날부터 어딜 그렇게 바삐 마실 나가슈?”
“예끼, 네 놈 같은 땡추가 상관할 바 아니다!”
“아니, 여보슈. 멀쩡한 중을 왜 땡추라 하슈!”
“네 놈 스스로 그 뜻을 알렸다!”
이키, 부처님 눈은 속일 수 없다. 벌써 내 불경죄를 알아채셨다.
“어이쿠, 부처님. 잘못했습니다. 한번만 눈감아주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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