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암자에서 삶에 밑줄 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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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암자에서 삶에 밑줄 긋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3.2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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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일지암 ‘청 년출가, 암자 수행 30일’

법인 스님은 말했었다. “출가수행자가 산사를 떠나 도심에서 살아가는 일은, 새가 숲을 떠나 낯선 세상에서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라고, 스님은 이른바 ‘수도승首都僧’의 삶을 훌훌 털어버리고 산승山僧의 본분으로 돌아간 암자에서 도시의 청년들에게 초대장을 띄웠다. “문득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좋은 암자를 나 혼자 누리기에는 너무 염치가 없다는 생각, 세상 사람들과 나누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밥 해 먹고 때때로 나무 하고 아침저녁으로 모여 앉아 책을 읽는 것이 일과의 전부인, 이름하야 ‘청년출가, 암자수행 30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거창할 것 없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가!
사실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렇다 할 수행 프로그램도 없다는데 과연 수행 기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결론은 ‘일단 가보자’였다. 암자를 향해 땅끝 해남으로 차를 달리던 중, 스님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몇 시 도착인가요? 점심은 여기서 원하신다면 준비하겠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손님상을 받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내심 ‘암자밥’이 먹고 싶었다. 망설이다, 그러겠다고 했다. 두륜산 능선에 부드럽게 감싸 안긴 일지암에 도착하니 스님이 찬바람 마다않고 서서 객을 맞았다. 그 마음이 환한 미소만큼이나 따뜻하게 전해져 왔다.
저만치, 한 청년이 초의 선사의 다실로 잘 알려진 단칸 초방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있었다. 수행기간 동안 하루씩 차례를 정해 초방에서 홀로 지내도록 하는데, 나무하고 불 때서 방을 덥히는 것 또한 각자의 몫이라고 했다. 한두 차례 순번이 돌아갔는지 이젠 불 때는 모습이 제법 능숙하다. 대중방 옆에 딸린 아담한 공양방으로 가니 청년들이 차려놓은 맛깔스런 점심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서 먼 길을 달려온 피로와 추위가 씻기는 참에 법인 스님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보다시피 거창한 것은 없어요. 그저 정답게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작은 일에 웃음을 나누는 거지요. 평소 누가 하는지도 모르는 밥을 사먹고 집에서 해주는 밥을 당연히 여기며 먹지요. 밥상에서 밥을 먹기까지의 과정에 참여도 안 해보고 생각도 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잖아요? 일상의 작은 가치가 소중하다는 것을 몸으로 부딪쳐 가면서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뭐, 다른 건 없어요.”
20대 청년 일곱 명이 1월 5일부터 2월 3일까지 생활하게 될 일지암의 하루일과를 살펴보니, 역시 평범한 일상이다.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좀 달랐다. 보통 절에서 새벽 3시에 하는 도량석을 5시 반으로 옮겼다. 전통에 얽매이지 말자는 뜻이다. 7시까지 아침예불과 108배, 참선을 마치고 공양을 준비해서 8시에 함께 먹는다. 108배에는 화가 많은 사람이라면 ‘분노가 사라지기를….’ 자비심이 좀 부족한 사람이라면 ‘따뜻함이 깃들기를…’ 하는 식으로 자기만의 염원을 담는다. 2인 1조로 순번을 정해서 공양주 소임을 맡도록 하는데 음식하고 먹는 것이 번거로운 ‘일’이 되지 않도록 하루 두 번으로 줄였다. 아침과 저녁만 먹고 간단한 간식으로 보충하는 ‘1일 2식’을 실천하는 것이다.
“암자에 오면 풍경 좋지, 기름진 음식이나 술, 인터넷, 스마트폰 저절로 끊어지지, 거기서 오는 몸의 쾌적함이 있어요. 또 사람도 끊어지니 시비가 그쳐지죠. 여기에 반드시 맞아들이는 사람의 따뜻함이 녹아들어야 합니다. 산에 있는 모든 것을 정성스럽게 나누는 마음이 중요해요. 이것이 일상의 힘이에요. 부처님 당시, 재가신도들이 부처님을 존경한 이유가 뭔지 압니까? 경전에 보면 ‘얼굴이 빛나고 미소가 아름답고 걸음걸이에 위의가 있고 음식을 절제하며 옷이 단정하여 많은 이들이 따랐다.’는 내용이 나와요. 이런 사생활, 이것이 삶의 모습 그 자체 아니겠어요? 우리가 잘 아는 전법 선언 말미에 ‘청정한 수행의 삶을 보여주어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불교는 삶으로 이야기하는 거구나’ 하는 깨우침을 주는 대목입니다.”
거창할 것 없는 일상을 떠나서 따로 수행이란게 있겠는가 하는 말씀이다. 그 때, 한 청년이 간식 시간이라며 감자전을 만들었다고 어서 오라고 했다. 아무런 간을 하지 않고 오로지 감자만 들어갔다는데 그 맛이 훌륭하다. 둘러앉아 나눠먹으니 극락이 따로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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