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상태바
소풍
  • 관리자
  • 승인 2007.06.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과나무

매년 봄철이면 어린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소풍을 가게 된다.   올해는 3학년 꼬마들을 담임하게 되어 소풍을 기다리는 우리반 어린이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소풍이 되게 해주고 싶었다.

   소풍을 가는 곳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진관사였다.   소풍 전날 내일의 준비물과 소풍지에서의 할 일을 알려주었다.

   매년 소풍을 가면 목적지에 도착해서 주의사항을 듣고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은 후, 반별 혹은 학년 전체가 즐거운 게임을 한 다음 휴지를 줍고 돌아오는 일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즐거운 소풍이라고 손꼽아 기다리며 소풍 전날은 잠도 잘 못잤던 경험이 내 어린시절에도 있었다.

   소풍날 9시까지 등교하라고 써주며 일찍 등교하지 말고 시간 맞추어 올 것을 신신당부했지만, 8시경에 교실에 들어와보니 몇몇 어린이들은 벌써부터 등교해서 즐거워하는 표정으로 들떠있었다.

   진관사는 학교를 출발해서 1시간 정도 걷는 거리였으나, 출발할 때부터 큰 소리로 노래 부르며 금방 그물에서 꺼내온 물고기처럼 팔팔하던 아이들이 축 늘어져서

   "선생님, 진관사가 얼마 남았어요?   다리 아파 죽겠어요."

하며 몇 번씩 반복해서 물어온다.   요즈음 아이들이 너무 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관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왼쪽엔 비록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솟아나 있지만 3학년 전체가 소풍할 장소로는 아주 좋은 곳이 있었다.   3학년 전체가 모여 즐거운 게임과 주의사항을 들은 후 각반별로 적당한 장소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후 다른 반들이 둥글게 앉아 놀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뒤로 하고 우리반 어린이들을 데리고 진관사 절입구에 도착했다.   절입구에는 진관사의 내력이 적혀있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반 어린이들은 그곳에 적혀 있는 내용을 적느라고 열심이었다.   기록이 끝난 후 진관사 경내로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비구니 스님들이 계시는 절이라 경내는 아주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진관사 경내를 구경한 후 우리반 어린이들을 모두 대웅전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어제 단청무늬 그리기를 계획했기 때문이다.

   햄버거나 피자를 좋아하고 전자오락에 정신이 팔려 있는 요즈음 어린이들에게 우리 것에 눈을 돌리게 하고, 우리나라 건축의 아름다움을 실제로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   그냥 지나쳐 버리기만 했던 우리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어린이들 스스로에게 발견시켜 주고 싶어서였다.

   우리반 어린이들은 가지고 온 공책을 펴놓고 앉기도 하고, 엎드리기도 하고, 서기도 한 편한 자세로 가장 마음에 드는 단청무늬들을 골라 그리기 시작하였다.

   대웅전 바닥에는 푹신한 카펫이 정결하게 깔려 있었다.   처음에는 앉기도 하고 서서 그리던 아이들이 차차 한 명씩 엎드려 그리더니, 나중에는 거의 대부분이 엎드린 편한 자세로 단청무늬의 아름다움에 취한 듯 무늬 그리기에 열심이었다.   대웅전을 가득채운 우리반 어린이들을 부처님께서 인자하신 얼굴로 사랑스럽게 내려다 보시며 흐뭇해 하시는 것 같았다.

   "다 그렸으면 일어나세요."

   "선생님, 너무 재미있어요.   조금 더 그리겠어요."

   우리반 어린이들은 내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아름다운 무늬를 찾아 그리기에 열중이었다.

   대웅전을 나와 나한전 돌계단에 앉아 소풍지의 자연보호 상태를 기록하고 여러 가지 나뭇잎 모양도 그렸다.

   절 마당 가운데에 철철 넘쳐흐르는 약수를 시원하게 마신 후 진관사 옆 계곡으로 갔다.   둥근 바위들 사이로 흘러 내리는 계곡물에서 마음대로 뛰놀게 했다.   물에 떠다니는 소금쟁이와 개구리를 쫓아다니며 물에 바지를 적시고, 신고 온 운동화를 적셨지만, 아이들은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어린이들이 자연속에 있으니, 더욱 생기있는 모습이 되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