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불・목건련의 열반과 붓다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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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목건련의 열반과 붓다의 슬픔
  • 자현 스님
  • 승인 2014.02.09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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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붓다를 존상이나 회화로 모실 때, 그 좌우의 제자로 마하가섭과 아난을 배치한다. 이는 중국불교의 선종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수받아 전개한 법의 상속자로서 이분들을 꼽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방불교나 티벳불교에서는 좌우의 제자로 사리불과 목건련을 모신다. 이는 붓다 재세시의 역할을 더 크게 본 것이다. 

 
| 붓다의 으뜸가는 제자와 관점 차이

불교에는 진리의 상속과 전개라는 법통法統의 시간성과, 붓다와 함께한 공간성에 대한 인식차이라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예컨대, 조선으로 말하자면 세종이나 영·정조와 같은 흐름을 우선으로 볼 것이냐, 정도전이나 이방원과 같은 개국공신을 높게 볼 것이냐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필자에게 붓다의 제자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을 두 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사리불과 아난을 든다. 사리불이 교단의 총리로 비유될 수 있다면, 아난은 비서실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사리불은 붓다와 함께 교단의 주축을 완성한 영웅 중의 영웅이다. 그래서 사리불을 ‘진리의 장수(法將)’라고 하는 것이다. 또 아난과 같은 경우는 붓다의 25년 시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붓다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교단의 확장과 안정을 위해서 주력한다. 때문에 『잡아함경』 권23의 「아육왕경」에는, 아소카왕이 기원정사에서 제자들의 부도를 참배할 때 사리불·목건련·마하가섭의 부도에는 10만 냥으로 공양했으나, 아난에게만은 유독 100억 냥을 공양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올바른 가르침의 홍포를 높이 산 것이다.

실제로 이 기록에는 깨달아 아라한이 되고도, 다른 이를 위해서 단 한 차례도 설법하지 않은 박구라 존자의 부도에 대해서도 나온다. 여기에 아소카왕은 단지 1전만을 공양한다. 이를 보고 신하들이 동일한 깨달음을 얻은 분인데 왜 그렇게 하냐고 묻자, 왕은 “이 분이 세상에 무슨 이익이 있는가?”라고 대답한다. 이는 불교의 사회포교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전달한다. 개인의 수행과 이익만을 위한 불교는 불교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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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투파 나란다의 사리불 수투파 

 
| “내 교단이 텅 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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