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청년 자연 속에 깃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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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청년 자연 속에 깃들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2.08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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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안병찬의 하동 쌍계사 템플스테이

어렸을 때 아버지 따라 집에서 가까운 구리 망우산을 종종 올랐었다. 그런데 오르는 길에 무덤이 하도 많아 가기 싫다고 떼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자연스레 산과는 멀어졌다. 산에 가지 않으니 절과의 인연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절에 가본 것은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경주 불국사를 다녀온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렇게 십몇 년이 흘렀고 20대의 마지막 봄, 사찰문화를 제대로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절에 가는 길, 눈부시도록 환한 햇살을 받은 푸른 나무들 사이로 쌍계사가 보인다.

 
 | 차나무 시배지에서 차맛을 알게 되다

쌍계사에서의 첫 인상은 청량하고 상큼한 공기로 다가왔다. 잠시 걸음을 멈춰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빌딩 숲 사이로 사람들에게 치여 가며 들이마시고 내뱉었던 서울의 그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눈을 뜨니 쌍계사가 더욱 평온한 모습으로 나를 받아준다. 적잖게 장난치기 좋아하고 까불거리는 나지만 가만히 입을 닫고 몸가짐도 차분해졌다. 저절로 겸손해지는 느낌이다. 거기에 회색 수련복으로 갈아입으니, 비로소 모든 것을 비우고 절에서 지낼 채비를 마쳤다. 그런데 모든 게 어리둥절하다. 처음 가본 장소, 처음 입어본 옷, 게다가 사찰 예법도 모르는지라 마치 방금 자대 배치 받은 이등병이 된 기분이다. 그때 스님께서 손짓하며 부르신다.

쌍계사는 차로 유명하다. 삼신산 기슭에는 12km나 되는 차나무 시배지가 있다. 막 올해 햇차가 나오는 시점이어서 차에 관련된 많은 행사가 하동에서 진행 중이었고, 쌍계사에서도 다도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다맥 전수 대법회와 108헌다례’에 참여하며 템플스테이가 시작되었다. 깨끗하고 연한 초록빛 가득한 차가 찻잔에서 찰랑거린다. 어쩜 색이 이리도 곱고 예쁠까. 한 모금 들이마시니,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차가 있었나 싶다. 따뜻한 온기에 쌉싸름하며 달짝지근 부드러운 차맛이 일품이다. 차를 삼켰어도 목에서 차향이 다시 올라와 입과 코를 간질인다.

차향을 음미하며 한 모금 더 마시는데, 불현듯 얼마 전 거금 들여 구입한 원두커피 핸드드립 세트가 떠오른다. 이전까지 차라고는 뜨거운 물에 티백 넣어서 먹어본 녹차밖에 없었다. 깊은 차맛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도,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는 차도구가 핸드드립 세트를 대신했을 텐데…. 연거푸 몇 잔을 더 마시며 스님께 이것저것 여쭈니, 하동차문화센터에서 차 만드는 법을 체험해보면 차가 뭔지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쌍계사를 둘러보는 것은 잠시 미루고 차를 배우러 발걸음을 옮긴다.

쌍계사 지역의 차는 남부의 따뜻한 기후를 바탕으로 지리산의 비옥한 토양에서 맑은 물을 먹고 자란 차나무에서 시작한다. 어린 찻잎을 따 250~300도로 달궈진 무쇠솥에서 잘 덖는다. 덖은 잎을 멍석에 놓고 손으로 비벼 통풍이 잘 되는 곳에 건조시킨다. 덖고 비비기를 몇 번 더 반복하고 나면 비로소 차가 완성된다. 직접 덖기와 비비기를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스님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뜨거운 솥에서 차를 정성스레 덖었다. 덖은 잎을 멍석에 펼쳐놓고 힘을 조절해가며 비비니, 차가 동그랗게 말리면서 제법 모양새를 갖추었다. 차를 제대로 알기에는 한참 멀었지만, 차와의 첫 만남치고는 훌륭한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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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기가 다분한 나지만 쌍계사에 들어선 후 몸가짐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저절로 겸손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모든 게 처음인 어리둥절한 상황, 때마침 스님이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스님이 내주는 차 한 잔에 쌍계사서의 적응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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