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정현우
누구에게나 기억은 있다. 필연적으로 기억은 ‘과거’를 수반하지만 의식 속에서 기억을 떠올리는 행위는 언제나 ‘현재’이다. 깨달은 이는 말했다. 현재의 순간 속에 과거와 미래가 영원으로 존재한다고. 정현우 작가의 작품 속엔 과거의 기억을 좇는 한 소년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 기억은 오롯이 현재화된 기억이며, 새롭게 재구성된 기억은 ‘그림’이라는 2차원의 평면 안에서 ‘영원’의 순간으로 박제된다.
“어렸을 때 쌀이 없어서 제 때 밥을 먹지 못하던 날이 많았어요. 도박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생활력 없는 가장이었죠. 쌀을 얻어오는 것은 늘 어머니 몫이었어요. 어느 날은 어머니가 쌀이 떨어졌는데도 오후가 될 때까지 쌀을 구하러 나가시지 않는 거예요. 하루 종일 온 식구가 굶을 수밖에 없었죠. 그러던 어머니가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야 문 밖으로 나가시더니 머리에 쌀 바구니를 이고 오셨지요.”
미루어 짐작할 뿐이지만 저녁이 될 때까지 자식들의 배를 굶겨야만 했던 어머니의 마음속엔 아마도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오갔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던 그때의 어린 소년은 나이 50을 훌쩍 넘긴 어른이 되어 그날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날의 ‘쌀’은 작가의 기억 속에서 ‘꽃’으로 다시 태어난다. 초승달이 비추는 밤, 어머니가 꽃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오는 정현우 작가의 ‘젊은 엄마’는 그렇게 탄생됐다. 가난을 낭만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작가가 말하는 예술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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