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관음사 주지 불교호스피스협회 회장 지현 스님
먼저 죽음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겠죠. 죽음에 대한 정의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죽음이란 현재가 과거로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현재라는 것이 ‘현재’를 발음하는 순간, 바로 과거가 돼버리죠. 한 순간도 죽지 않는 순간이 없고, 한 순간도 태어나지 않는 순간이 없는 거예요. 우리는 지금 계속 죽고 있는 동시에 계속 태어나고 있는 존재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이렇듯 죽음을 새로운 태어남으로 받아들인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줄어들 거예요.
조그맣고 보잘 것 없는 집에서 큰 집으로 이사간다면 기분이 좋겠죠. 이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좀더 넓고 큰 집으로 이사하는 것쯤으로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어느 나라에 가고 싶은데, 그 나라의 대통령으로부터 국빈 초청을 받아 가면 두려움도 없고 좋겠죠. 그런데 국빈 초청을 받으려면 그 나라에 도움이 될 만한 자격을 갖춰야 하잖아요. 우리가 정토에 태어난다는 것도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까요. 아미타부처님의 초청을 받아 극락세계에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극락세계가 필요로 하는 조건들을 충족시키면, 아미타부처님이 마중나와 반갑게 맞아주시겠죠. 그 자격요건이 일심염불, 즉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염원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일념으로 부르는 것이라고 했어요. 이처럼 현재의 삶에 일심으로 집중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임종의 순간에도 그 집중의 힘이 다음 생으로 아주 즐겁고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만들 수 있겠죠.
그렇죠.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을 둘이 아니라 하나로 보고 있어요. 의상 대사의 「법성게」에서도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 생사와 열반은 언제나 함께 어우러져 있다)”라고 했잖아요. 태어남과 죽음이 다르다는 관념을 부술 때 그 관념 너머에 진리가 있습니다. 불이不二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고 하는 『반야심경』의 가르침이 진리가 될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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