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가 손짓하는 가을이다. 또 낙엽은 우수수 고혹적이다.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센티해진다. 세상의 고뇌를 모두 껴안은 듯 인생이 허무해진다. 가을의 끝자락이다. 가을은 시와 수필의 계절이다. 명수필을 한 권. 절세의 수필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세상사는 모두 초라해진다. 이즈음 승僧 요시다 겐코(吉田兼好, 1283~1352)의 『도연초徒然草』라고 하는 수필집이 떠오른다.
이 일단에서 독자들은 그만 마음을 사로잡힌다. 스스로 ‘수필이란 이런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매우 짤막하지만 이 책에 수록된 여러 편의 수필 가운데서도 단연 으뜸. 서단序段은 몇 줄 되지도 않지만, 사람을 현혹시킨다. 성급하게도 다음 구절을 재촉한다.
“인간은 뭐니 뭐니 해도 용모나 풍채가 뛰어나게 훌륭하기를 바랄 것이다. 말하는 모습도 역겹지 않고 애교도 있으면서 수다스럽지 않은 그런 사람과는 언제까지나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주 훌륭한 분이라고 믿고 있던 사람이 어이없는 본성을 드러내게 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할 말이 없어진다. 또 신분이나 가문, 용모 등은 타고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마음은 현명하고 슬기롭게 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비록 용모나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도 학문이 없고 보면 근본이 비천해 보이고, 또 얼굴이 상스럽게 생긴 인간들과 동렬로 보여서 보잘 것 없는 처지로 밀려 버리고 말게 되는 것은 어쨌든 간에 유감스러운 일이다.”(제1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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