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다리 놓을까 눈이 오면 어쩌나 다리 하나 놓자야 무슨 다리 놓을까
마음다리 놓자야 마음다리 놓자야 뜨릇뜨르 놓자야
이 가락은 중국 한겨레 노래로, 방언정담 을 쓴 국어학자 한성우가 두만강 가에서 만난 옌벤 소녀 소매小梅가 또랑또랑하게 불러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는 ‘마음 다리 놓자야’이다. 본디 사람과 사람 사이는 ‘우리 사이’였지 ‘나’와 ‘남’이 아니었다. 사람이 처음 따돌려진 것은 ‘나’와 ‘남’이 따로 떨어지면서부터이다. ‘나’와 ‘남’이 떨어지면서 남은 ‘대상’으로, ‘사물’로 바뀐다. 사랑하기란, 대상과 나 사이를 이어 ‘우리’로 돌려세우는 일이다. 무엇을 세우려면 굄돌, 들어 올리려면 지렛대, 오르려면 디딤돌이나 사다리, 이으려면 다리를 놔야 한다. 모두 ‘사이 이음’으로 얘기꽃 피우기와 다름 아니다.
| 드나듦, 그리고 자취 없음인드라망생명공동체 살림을 맡고 있는 이가 도법에게 물었다. “스님, 귀정사에 가신 지 오래 되셨어요? 안 오신다고 다들 궁금해 하던데요.” “허허, 나는 도구잖아. 날 보고 싶으면 일을 만들어서 부르면 되지. 나는 일 따라 움직이니까. 실상사 살지만 이번에 열흘이나 가지 못했어. 무슨 일이 있다면 그리 가지.” 오른손이 가렵다는데 왼손이 마다할 리가 있겠느냐는 도법. 쓸모를 찾은 이들에게는 늘 제 몸을 거저 내준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간다. 가서 때로는 디딤돌이나 굄돌이 되고, 지렛대인가 하면 어느새 다리로 탈바꿈한다. 오고감, 드나듦이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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