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새겨지는 마음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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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새겨지는 마음의 흔적
  • 불광출판사
  • 승인 2012.05.2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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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의 고집불통佛通



중요무형문화재 제120호 석장石匠이재순

국내 최초로 중요무형문화재 석장으로 지정된 이재순(57) 명장. 넉넉한 풍채와 느릿한 말투에 편안함과 여유가 묻어나온다. 그러나 그는 어려서부터 고집이 세기로 유명했다. 집념과 승부근성이 강해,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누구한테 지거나 무엇에 한 번 빠지면 삼일 밤낮 밥도 잠도 잊는다. 딱지치기를 해도 동네 애들 것다 따야 집에 들어오고, 썰매를 타도 맨 앞에서 가장 빨리 타야 했다. 그런데 그가 유일하게 싸워서 이기려 들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돌이다. 친구처럼, 때론 연인을 대하듯 돌과 함께 해온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궁하면 통한다
이재순 석장은 13살 때부터 돌을 다뤘다. 전남 담양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머슴교육을 받듯 농사만 짓는 것이 싫었다. 팽이나 썰매를 만드는 것
에서부터 손재주가 남달라, 석수 일을 하는 외삼촌을 따라나서 돌과 처음 인연을 맺고 망치를 손에 쥐게 된다. 손으로 일일이 공구를 벼르고 돌을 다듬는
전통기법으로 작업을 하며 기술이 숙달되어 갔다. 2년쯤 지나니 돌 만지는 일에 슬슬 자신감도 붙고 재미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어린 나이에도 워낙 일을 잘하고 속도도 빠르다보니, 선배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모함을 받게 된 것이다. 일 자체에 환멸감을 느껴 그만 둘 결심을 하고, 잠시 쉴 생각으로 경주 여행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석굴암 부처님을 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석굴암은 불교예술의 극치입니다. 딱딱하고 차가운 돌로 그토록 아름답게 빚어낸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어요. 사람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지요. 석굴암 부처님을 보며, 나도 이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때 새롭게 발심하여 다시 망치를 들게 되었습니다.”
그는 더욱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담금질했다. 당시 석조각의 대가인 김진영 선생 문하로 들어가 샘플 제작과 설계 등을 배우며 석공예 기술의 전반적인 과정을 습득해나갔다. 기량도 일취월장하여, 1976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석공예 부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다. 이후 그는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이듬해 네덜란드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 대회 석공예 직종에서 금메달을 따고 동탑산업훈장까지 받았다. 그의 나의 22세였다.
“모든 일이 궁하면 통하는 것 같아요. 석굴암 조형미에 감탄하여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렇고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도 그래요. 사실 국제기능올림픽에는 출전을 못할 뻔 했거든요. 석공예 종목은 전 대회에서 성과가 없어 예산 부족으로 출전 명단에서 빼버렸는데, 제가 꼭 가고 싶다
며 3번이나 찾아가 졸라댔거든요. 여하튼 그때 우리나라가 종합우승을 차지해서, 무지개 차에 올라 카퍼레이드를 하는데 굉장히 뿌듯하고 기뻤어요.”

끊임없는 공부와 작업 활동
그는 석조의 모든 분야에 뛰어나지만, 특히 불상, 석등과 관련된 석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불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이미 어린 나이에 기능적으로 검증을 받았지만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우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다. 수년에 걸쳐 대학교수들로부터 조형구성을 배웠고, 인체 특성을 잘 표현하기 위해 해부학을 연구했다. 또한 부처님을 조성할 때 이론적으로도 충실하기 위해 동국대 불교대학원에서 불교학을 공부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영광 백제불교최초도래지의 사면대불, 대만 자항사 석굴암본존불, 공주 영평사 아미타불, 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 복원, 월장사 석조보살좌상 복원, 진천 보탑사 석등, 효봉선사석조상 등이 있다.
각 작품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백제불교최초도래지에는 원래 해수관음상처럼 단독불로 세우려 했다. 하지만 바람이 엄청 강하게 부는 곳이라 단독불로는 바람을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아, 전면 수정하여 사면대불(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마라난타존자)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효봉 스님 석상을 조성할 때는 처음에 너무 잘하려고 욕심을 부린 탓에 상호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무척 애를 먹었다. 그래서 작업을 전면 중지하고 효봉 스님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효봉 스님을 가슴에 온전히 모신 후 작업을 재개하여 원만히 회향할 수 있었다. 대만 자항사 석가모니불상은 직접 대만에서 작업 의뢰가 왔다. 자항사 실무자들이 1년에 걸쳐 세계 곳곳의 불상을 조사한 후 석굴암 부처님이 최고라며 의뢰한 것이다. 자항사 불상은 석굴암 부처님보다 크기가 1.7배에 이르며 무게도 40톤이 넘는 대작이다. 불상을 조성할 때 자항사 신도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와 기도를 하기도 했다. 3년에 걸쳐 조
성하여 대만으로 보내려 하는데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가지 않아, 벌크선을 빌려 빔으로 박스를 짜서 보냈다. 자항사에 부처님을 조성할 때는 흐린 날 갑자기 해가 비치며 부처님 뒤에서 방광이 일어나 모두들 기뻐했다고 한다.
이재순 석장은 유물의 복원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일제가 수탈해간 북관대첩비(임진왜란때 정문부 장군이 이끈 함경도 의병의 전승비)가 환수되자, 그의 손으로 좌대와 옥개석을 복원해 북한으로 보냈다. 북한으로 돌아간 북관대첩비는 북한 국보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구리시가 진행한 고구려 역사공원 조성 사업에 참여해, 진짜 광개토대왕비와 같은 높이(6.39미터)와 무게(42톤)의 복제비를 조성하기도 했다. 현재는 숭례문 복원공사에 참여해 옛 석수들의 지혜를 배우며 성곽 복원의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돌을 다루는 것은 마음을 다루는 것
돌과 함께 해온 45년의 세월, 그는 백장청규百丈淸規에서의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말을 실천하듯 평생 게으름을 피워본 적이 없다. 노동강도가 어느 분야보다 세다보니, 며칠간 일을 하다보면 뼈가 아플 정도로 힘들다. 일을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수시로 들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된 건 우리 전통 석조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때문이었다.
“태국의 불상이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보면 그 크기와 정교함에 압도되지만, 우리의 그것처럼 자연미와 조형미를 살리진 못했어요. 우리의 전통양식은 보는 이의 시선까지 고려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살려 편안한 아름다움을 제공합니다. 석조물의 매력은 아무래도 돌이라는 견고한 물질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오랜 세월 변형되지 않고 유물로 남겨진다는 데 있을 거예요. 간혹 여행을 하다 뜻하지 않게 제 작품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조성할 때는 엄청난 고통이 따르지만 ‘이걸 언제 했지’하는 뿌듯함이 밀려들 때도 있어요.”
그는 자항사 부처님을 완성한 것으로, 석공예를 하며 발원했던 1차적인 원은 이미 이뤘다고 한다. 이제는 수준 높은 석조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친다. 석등 공원을 만들어 연등축제를 하듯 석등축제를 열어, 사람들에게 마음의 등불을 켜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어 한다. 또한 석조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조성해 석조문화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한다.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아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제자가 60여 명에 이른다. 예전에는 무엇이든 혼자 하려는 마음이 강했는데, 이제는 제자들과 더불어 함께 이루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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