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수행자들의 왕대한민국전(往大韓民國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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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수행자들의 왕대한민국전(往大韓民國傳)
  • 불광출판사
  • 승인 2011.11.0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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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신라에서 태어난 혜초는 부처님의 법을 좇아 16세 때(719) 당나라로 유학 갔다. 그곳에서 인도 출신의 밀교승 금강지의 제자가 되었으며, 스승의 권유로 723년 바닷길을 통해 불교 성지인 인도로 구법(求法) 여행을 떠났다. 4년 동안 인도와 서역의 여러 지역을 순례하고 당나라로 돌아온 혜초는 기행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겼다. 천축국은 지금의 인도를 말하며, 넓은 인도를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지방으로 구분해 오천축국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1,400여 년이 지난 현재, 한국불교를 배우기 위해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수행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동남아는 물론 북미와 유럽 등 출신지도 다양하다. 오직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수만 리 길을 마다않고 온 외국인 수행자들, 그들은 무엇을 공부하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또 그들의 꿈과 희망은 무엇인지 궁금증을 풀어본다
.
<편집자 주
>

      계룡산 무상사에서 정진 중인 외국인 수행자들의 모습.

외국인 수행자와 한국불교
2, 3의 혜초
들을 위한 한국불교의 노력
1,400여 년 전 신라에서 당나라로 유학을 간 혜초 스님은 인도 출신 스승의 권유로 인도 구법(求法) 여행을 떠났다. 4년여간의 순례 후 당에 돌아온 스님은 왕오천축국전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여기서 스님은 인도 내 여러 나라의 기후와 풍습, 종교 등을 간단명료한 문체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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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국가 중 유일하게 선불교(禪佛敎) 전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한국불교에는 입장이 바뀐 2, 3의 혜초들이 법을 구하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물론 현재 한국의 스님들이 해외에 나가 공부하고 포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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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수행자들이 한국과 인연을 맺는 유형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1960년대부터 해외에서 포교를 했던 숭산 스님의 영향으로 오는 수행자들이다. 지금도 한국에 오는 적지 않은 서구 출신의 스님들의 입에서는 스승 숭산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직접 숭산 스님을 만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스님도 있지만, 숭산 스님이 역설했던 참나를 찾기 위해 한국을 찾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 스님들은 한국에 남아 정진하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 한국불교를 널리 알리고 있기도 하다. 서구 출신의 스님들은 서울 화계사와 계룡산 무상사 등에서 함께 정진하며 서로의 공부를 탁마한다
.
두 번째는 동남아 출신 스님들의 경우다. 대부분 초기불교국가 출신인 동남아 스님들은 선진 한국불교를 배우기 위해 온다. 대승불교에 대한 연구를 하며 자국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살피는 일도 함께 한다. 외국인 노동자 지원 업무를 하는 조계종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소속 동남아 스님들만 해도 20여 명에 이른다. 이들 스님들은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이주민들의 정신적 귀의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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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불교는 외국인 수행자들에게 그리 넉넉한 지원을 해주지 못하는 것이 실정이다. 일부 사찰들의 경우 외국인 스님들을 초청하고도 방치하는 경우까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계종에서 해외 담당 업무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외국인 수행자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없고 예산과 시스템도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장기적 대안을 가지고 외국인 수행자 지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재출가를 원하는 외국인 스님들이 보다 쉽게 한국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것도 시급하다. 어릴 때 출가하는 대부분의 동남아 스님들은 비구계까지 받고 한국에 공부하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한국불교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보완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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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조계종은 최근 외국인 행자교육원을 개설해 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한국에서 출가(또는 재출가)하는 스님들에게 체계적으로 한국의 불교와 문화를 교육하기 위해서다. 외국인 행자교육원장 수암 스님(서울 화계사 주지)한국불교에 매료돼 한국을 찾은 외국인 수행자들은 열정과 달리 소통의 어려움, 문화적 차이에 따른 갈등을 이겨내지 못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늦게나마 외국인 행자교육원이 생긴 것은 긍정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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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불법(佛法)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출신과 성별, 인종 등은 정진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직 불법(佛法)을 구하기 위해 이 땅에 온 외국인 수행자들에게 한국불교의 넓은 품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 때다
.

      서울 수국사에서 정진 중인 진여 스님(좌)과 선정 스님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길에서 만난 외국인 수행자들
한반도의 안과 밖,
푸른 눈의 납자들이 있다

수좌
꿈꾸는 두 청년
95일 아침 서울 수국사. 황금법당과 미륵부처님 앞에서는 불자들의 기도가 계속되고 있다. 수능을 앞둔 학부모가 대부분인 불자들의 틈에서 울력을 하는 푸른 눈의 젊은 스님들이 눈에 들어온다. 진여(31, Yaroslav Skachkov) 스님과 선정(29, Czarnik Michal) 스님이다. 진여 스님은 러시아, 선정 스님은 폴란드에서 왔다. 정갈하게 입은 사미스님의 복장에서 신참의 긴장이 느껴진다
.
두 스님은 예산 향천사에서 정진 중인 현문 스님의 소개로 의연 스님(조계사 부주지)을 만나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장경사에서 수행자의 길을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 2월부터 수국사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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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불교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성인이 되어 잡지 사진기자를 했는데 내가 누구인지, 내 삶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
진여 스님은 다양한 경전을 보면서 공부를 시작했고 의문을 풀고 싶다고 했다
.
어려서부터 숭산 스님이 세운 폴란드 바르샤바 젠 센터에 다녔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3년 전부터 휴가를 내 한국에 와 계룡산 무상사에서 안거를 보내고 다시 폴란드에 갔습니다. 몇 번 안거를 살고 나서 수행자가 되기 위해 출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
선정 스님도 참나를 찾고 싶다고 했다. 선정 스님의 동생 역시 일본에서 출가해 납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두 스님은 계룡산 무상사 조실 대봉 스님에게 이뭣고를 화두로 받았다
.
평생 참선만 하겠다고 밝힌 두 스님은 며칠 후 기본선원 입방 시험을 본다고 했다. 일반 강원이 아닌 참선 전문 학교에 입학하고 싶다는 것이다. 선정 스님은 이번에 입학하면 좋겠지만 떨어지더라도 다시 도전해 꼭 기본선원에 가고 싶어요.”라며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진여 스님은 수국사 주지스님 이하 모든 대중들이 우리를 너무 아껴 주십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수좌가 되고 싶습니다.”라며 굳은 의지를 다졌다
.

      넉넉한 인상의 담마끼띠 스님. 스님은 자주 마주협을 찾아 스리랑카 이주민 지원 문제를 의논한다.

이주노동자의 든든한 벗
조계종 전법회관 3층에 있는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이하 마주협)에 담마끼띠(29, Dhammakitti) 스님이 찾아왔다. 평소 이주노동자 관련 문제로 자주 찾는 곳이다. 마주협 남춘호 팀장과 근황 얘기를 나눈 담마끼띠 스님은 상담 후 주석처인 평택 도원사로 발걸음을 돌렸다
.
스님은 20068월에 한국에 왔다. 스리랑카 캔디에 있는 스리수 달마 사원에서 정진하던 스님은 사원의 추천으로 서울에 와 보리수 선원에서 재가불자들에게 팔리어와 위빠사나를 지도했다. 평소 경전 공부에 관심이 많았던 스님은 이내 동국대 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스님은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공()’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스님은 논문 준비 말고도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한국에 들어와 있는 17,000여 명의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보살피는 일이다. 스님은 스리랑카 출신 스님 3명 과 함께 평택과 울산, 광주, 아산, 오산 등을 돌며 한 달에 한 번 노동자 법회를 주관하고 있다. 또 평택 도원사에서 매주 일요일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위한 한글 교실을 열고 있다
.
현재 도원사 주지 공운 스님의 배려로 공부는 물론 스리랑카 노동자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스리랑카 불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정신적 휴식처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
담마끼띠 스님은 특히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있는 일부 노동자들의 경우 몸이 아프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 손을 쓸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불교계와 관련 당국에서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라고 희망했다. 스님은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면 유럽으로 가서 불교를 더 공부할 생각이다. 그 후 다시 스리랑카로 돌아가 후학들을 지도할 계획이다
.
스리랑카만 해도 한국의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꽤 많이 와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 스리랑카 불자들에게도 초기불교뿐만 아니라 대승불교와 서구 불교까지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시원한 웃음만큼이나 담마끼띠 스님은 활기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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