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지스 강을 건너 5비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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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을 건너 5비구를 만나다
  • 자현 스님
  • 승인 2011.05.2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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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부처님의 참모습

수행자에게는 뱃삯을 받지 말라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은 곳에서 최초 설법지인 녹야원까지는 대략 320정도나 되는 먼 거리이다. 붓다는 이 길을 중생구제를 위한 설법의 마음과 함께 맨발로 걸으셨다. 녹야원은 바라나시 북쪽으로 약 6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붓다의 행로는 바라나시에서 녹야원으로 연결된다.

갠지스 강의 강변 도시인 바라나시로 가기 위해서 붓다는 필연적으로 강을 건너야 했다. 강변에 도착한 붓다는 뱃사공에게 강을 건네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뱃사공의 답변은 뱃삯의 요구였다. 붓다는 뱃사공에게 수행자는 세속적 가치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금전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한 뒤, 다시금 도강(渡江)을 부탁한다. 그럼에도 뱃사공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붓다는 문득 고개를 들어 자유롭게 강을 건너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면서, 지형적 한계에 결박당하지 않는 자유를 찬탄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마저 넘어선 신통으로 강을 건넌다. 이를 보고 뱃사공은 자신이 사욕에 가리어진정한 수행자에게 무례를 범했음을 한탄하며, 몸부림치며 자책하게 된다.

이 소문이 두루 퍼져 왕의 귀에 들어가자, 왕은 모든 수행자에게는 뱃삯을 받지 말라는 전교를 내린다. 인도에서 수행자에게 뱃삯을 받지 않는 풍속은 이렇게 붓다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이 일화는 붓다의 발걸음이 더 이상전철(前轍)을 밟는 걸음이 아니라, 새로움을 만들어 가는 창조적 행보라는 점을 분명히 해준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붓다가 신통을 사용해 강을 건널 거라면, 왜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깨달음 이후의 붓다에게 있어서는, 모든 행위가 중생을 위하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서였다면, 붓다는 처음부터 신통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뱃사공을 제도할 수 있음을 관조하고, 뱃사공을 위해서 이러한 번거로움과 치욕적인 부탁의 행위를 전개한 것이다.

붓다는 답을 제시해 주는 분이 아니다. 다만 우리로 하여금 답이 무엇인가를 스스로가 알 수 있도록 자각케 해주는 분이다. 이 점이 바로 붓다의 규정지어질 수 없는 자유의 위대함이다.

사슴에게 허용된 땅, 녹야원

붓다는 상업도시인 바라나시에서 풍요와 가능성, 그리고 가치관의 혼란과 새로운 민중의 요구들을 목도하게 된다. 이것은 붓다에게 충분한 힘이 되었을 것이다. 붓다는 바라나시에서 5비구가 있는 녹야원, 즉 사슴동산으로 간다.

녹야원은 전생의 붓다가 사슴왕이었을 때, 거느린 무리 중 새끼를 밴 암사슴을 대신해 죽고자 했던 보살행의 땅이다. 당시 이곳을 다스리던 인간의 왕은 이러한 사슴왕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감동하여, 이곳을 사슴들이 자유롭게 사는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녹야원이라는 명칭이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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