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가 아닌, ‘붓다로서의 삶’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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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가 아닌, ‘붓다로서의 삶’의 시작
  • 자현 스님
  • 승인 2011.04.2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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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부처님의 참모습

붓다의 위대성은 자신의 깨달음을 내면에만 한정하지 않고 중생들을 위해 과감히 던졌다는 데 있다. 자신이 애써 떨쳐낸 바로 그곳으로 민중을 위해서 다시금 들어간다는 것은 숭고함을 넘어선 거룩함이다. 그러나 이제 사바세계의 고통[苦海]은 더 이상 붓다를 염오(染汚)하지 못한다. 다만 거기에는 중생을 위한 붓다의 주체적인 선택의 고뇌만이 있을 뿐이다.

불전에는 붓다의 중생구제로의 방향전환이 범천의 간청에 의해서라고 나와 있다. 신이 인간에게 가르침을 요청한다는 것은 불교의 인본주의적 특징을 잘 나타내준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그 근저에는 중생에 대한 붓다의 처절한 연민이 흐르고 있다. 마치 여인의 출가를 간청한 것은 아난이지만, 그것은 인간평등과 해방을 위한 붓다의 주체적인 판단의 결과였던 것처럼 말이다.

 

스승들을 첫 교화의 대상으로 삼다

붓다가 중생구제를 위한 설법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가장 먼저 생각한 인물은 옛 스승이었던 ‘아라라 카라마’이다. 스승이었던 분을 교화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인도가 능력제를 중심으로 하는 유목문화 구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즉, 이는 나이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문화의 사제관(師弟觀)과는 다른 전통인 것이다.

붓다는 깨달음을 성취함과 동시에 모든 신통력도 구족했기 때문에, 아라라를 생각하자마자 그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붓다가 아라라 다음으로 생각한 인물은 역시 과거의 스승이었던 ‘웃다카 라마풋타’였다. 그러나 그 또한 연로하여 죽음을 건너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한 사람이 예전에 자신을 따르던 다섯 비구이다.

붓다가 첫 교화의 대상으로 스승들을 생각했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는 붓다가 이들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들 역시 붓다의 가르침을 수용할 정도로 개방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붓다의 깨달음이 이들의 관점과 유사한 가운데 그것을 떨쳐낸 것이라는 점이다.

붓다가 아라라를 먼저 생각했다는 것은, 붓다의 깨달음이 웃다카에 비해서 아라라의 방식과 보다 유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최후로 선택한 다섯 비구의 경우도 정반왕에 의해서 출가한 석가족이지만 동시에 아라라의 제자였다는 전승도 있는 인물들이다. 즉, 전체적으로 아라라와 연관되는 것이다.

선(禪)과 정(定) 그리고 중도주의

붓다 당시의 수행법은 색계와 관련된 4선과 무색계와 관련된 4무색정의 두 가지로 대별된다. 후대에 이르면 선(禪)과 정(定)은 하나로 뒤섞여 선정이라는 개념을 파생하지만, 처음에 양자는 분명히 구별되는 다른 계통의 수행법이었다. 후일의 대승불교는 삼매를 중심으로 하는 정(定)적이다. 그러나 초기불교는 정적이라기보다 선(禪)적이었다. 이는 수행완성인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 중 해탈한 존재인 아라한을 제외한 세 성위(聖位)가 공히 색계에 배속된다는 것을 통해 단적인 파악이 가능하다. 이는 또 붓다의 최후 열반이4선에서 이루어졌다는 기록을 통해서도 시사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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