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승 해안(海眼)선사
그 분은 내 인생의 방향을 확정 지어주신 법사(法師)요 은사(恩師)요 안내자였다. 나는 그 분과의 만남과 동시에 불법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오로지 해안 스님과 인연된 데서 비롯된다.
스님과 만나기 전까지 내 딴에는 대장부답게 사는 길을 찾느라고 무척 애를 썼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서 그 길을 찾으려고 했고, 학업을 마친 뒤에는 닥치는 대로 고전을 뒤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두가 내 마음을 붙잡아 주지는 못했다. 그러는 가운데 발길 닿는대로 절을 찾아가 스님들의 법문을 듣기도 하고 질문을 던지기도 하였다.
그러기를 얼마 하면서 어쩌다가 나의 질문에 대답이 곤란해지면 그 스님께서는 “그것은 변산에 있는 서래선림(西來禪林)에 해안이라는 선지식이 있으니 거기 가서 물으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면서 선지식이란, 분별을 뛰어 넘은 밝은 지혜를 갖춘 큰 스님을 뜻하는 것이라고 까지 친절하게 일러 주었다. 여러 스님으로부터 그런 권유를 받게 되자 어느덧 내 마음 속에는 해안스님에 대한 동경이 가득차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스님으로 부터 「해안강의 금강반야바라밀경」이란 책 한권을 빌려 받게 되었다. 내가 동경하던 스님께서 강의하신 불경인지라 잔뜩 기대에 부풀어 책을 펴게 되었는데 그 서문에서 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다.
나는 밤을 새워 읽었으며 이튿날 공책을 사서 한권의 책을 모두 베끼고 난 뒤 빌려 온 책을 돌려 주었다.
경전을 읽어 가던 중 “무엇이 가장 잘 사는 법이라고 이름지을 정해진 법도 없고 또 부처님께서 무슨법을 설하신 일정한 법도 없다(無有定法 名阿耨多羅 三藐三菩提 亦無有定法 如來可說).”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말할 수 없는 감동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이 일이 있는 뒤 나는 스님에게 서신을 올렸고 이어서 수많은 편지가 오고 가고 가르침을 받으면서 마침내는 언어가 끊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해 늦은 가을 해안스님으로부터 서래선림에서 특별정진법회가 있게 되니 꼭 참석해서 정진에 임하라는 연락을 받고 나는 기다렸다는듯 달려갔다.
21일간의 정진기간이었다. 나는 분별과 사량으로서는 추구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던 때인지라 오직 시심마(是甚麽)화두에 매달려 일사불란한 정진으로 매진했다. 참으로 목숨을 건 나와의 투쟁이었다. 스므 하루가 마치 하룻낮 하룻밤처럼 번개같이 지나가고 말았다.
정진법회가 끝나고도 나는 하산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기필코 인간지대사(人間之大事)를 결정짓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용솟음쳤던 것이다.
나는 머리를 깎고 사미계를 받았다.
그날로 부터 조실스님을 시봉하게 되었다. 그때 내 나이 30. 나는 이렇게 해서 해안스님을 만나게 되었고 스님께서 열반에 드시는 날까지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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