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와 장엄] 천장의 장엄 닫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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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토와 장엄] 천장의 장엄 닫집
  • 유근자
  • 승인 2010.10.2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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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토와 장엄

왕의 권위와 파라솔(Parasol)

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그 때문에 외출할 때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햇볕 가리개인 양산이었다. “여자라서 다행이다.” 싶을 때가 가끔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뙤약볕 아래를 양산을 쓰고 걸을 때이다. 여름 내내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양산을 쓰고 걷는 남자의 모습은 보기 어렵다. 언제부터 남자들은 양산을 쓰지 않게 되었을까.

서아시아의 대제국은 기원전 6세기 경부터 기원전 4세기 경까지 번성한 아케메네스 왕조이다.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 알렉산더에게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 3세가 패하면서 아케메네스 왕조는 무너졌고, 그 찬란했던 영광은 당시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 궁전 유적이 증명할 뿐이다.

아케메네스 왕조를 최강대국으로 만들었던 왕은 다리우스 1세와 그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 왕이었다. 그들은 왕 중의 왕, 위대한 왕, 페르시아의 왕이라는 명문을 유적의 곳곳에 새겨놓았는데, 페르세폴리스 유적에 남아 있는 왕들은 당시 인도의 문물이었던 파라솔 아래에 서 있다. 파라솔은 곧 왕의 상징이었다(그림 1).

부처님의 출가 장면을 보자.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광명의 길로 들어서는 싯다르타 태자의 머리 위에는 그의 신분을 상징하는 파라솔이 펼쳐져 있다(그림 2). 파라솔은 고귀한 신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도, 싯다르타 태자도 모두 파라솔 아래에 있다.

부처님과 차트라(Chatra)

파라솔은 산스크리트어로 차트라라고 하는데 산개(傘蓋)로 한역되었다. 인도의 초기 불교미술에서 산개는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탑 꼭대기나 부처님의 머리 위를 덮는데 사용되었다. 또한 산개는 부처님의 모습을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하기 이전에는 보리수·법륜·금강보좌·불족적 등과 함께 부처님을 표현하는 상징물로 사용되기도 했다.

전륜성왕이 파라솔 아래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탑 꼭대기나 불상의 머리 위에 있는 산개는 그 아래에 있는 것에 대한 존숭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다. 왜 불탑과 불상 위에 산개를 표현하게 되었을까? 그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햇빛 가리개인 일산(日傘) 유래설과 나무 기원설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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