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실상사가 꿈꾸는 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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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실상사가 꿈꾸는 불사
  • 불광출판사
  • 승인 2010.08.3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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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따라 마음 따라

스님, 법당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스님, 죄송한데 법당이 가득 차서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행자님은 연신 스님들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스님들을 돌려보낸다. 백중기도 입재하던 날, 화엄학림 연구과정인 화림원 스님들이 사시 불공을 드리기 위해 법당에 들어가려고 할 때 생긴 일이다. 실상사는 법당을 좌우로 나누어 왼쪽은 스님, 오른쪽은 재가불자님들의 자리로 쓰는데, 스님 17명이면 법당 구석구석까지 빼곡히 앉게 된다. 평소에는 그 정도로 감당할 수 있는데, 백중기도 입재일에는 실상사에서 15분 거리에 거처하고 있는 화림원 스님들까지 법당에 들어오려는 바람에 사단이 나고 말았다.
실상사는 사회적, 역사적 의미로 보자면 작은 절이 아니다. 최초로 이 땅에 자리 잡은 선종 가람이 실상산문 실상사이니 선종의 맥을 계승한 조계종단의 탯자리에 해당한다. 왜란으로 절이 불탔을 때 남원부사가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에는 “이 땅의 기운을 바르게 하기 위해 이곳에 절을 조성하였으니, 예로부터 실상사가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실상사가 쇠하면 나라가 위태롭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도선 국사가 이 땅의 기운을 살핀 뒤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기운이 이 땅에 잘 갈무리되도록 하기 위해 큰 철불을 조성하여 지리산 주봉 천왕봉을 향해 앉혔다는, 입으로 전해지던 창건 설화가 공문서로 확인되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 종단 내적으로는 화엄학림이라는 석·박사 과정의 전문교육이 이루어지는 교육도량으로 30여 명의 비구승이 상주하고, 대사회적으로는 생명평화운동, 지역공동체운동, 대안교육운동의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실상사 불사세미나 ‘우리나라 절불사에 대한 성찰과 방향 모색’



휑한 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현실 도량으로서의 실상사는 이러한 의미에 비해 매우 초라한 편이다. 왜란으로 소실된 뒤 다시 지어 조선 최고의 건물이라고 했던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건물이 조선 말기에 화적의 손에 소실되고 말았다. 그 뒤 조그맣게 지어진 법당은 스님들이 모두 들어갈 경우 재가불자가 밖으로 나와야 하는 실정이고, 하나 있는 대중방 또한 많은 대중을 수용하기에는 넉넉하지 않은 사정이다. 수직과 수평의 조화와 긴장미를 가지는 우리 사찰건축의 아름다움도 실상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교리에 맞게 공간을 배치하고 열고 닫고 가리고 트는 멋도 없다. 빈곤한 시골 살림에 식구는 흥부 가족이다보니 필요에 따라 쉽게 지어 쓰는 조립식 건물이 도량 곳곳에 자리잡아 도량의 통일성을 해치고 있다. 조경을 연구하는 정영선 님은 “천왕문을 지나 절 마당으로 들어서면 너무 휑한 공간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다.”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불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 안팎에서 제기되어 왔다.

불사의 열 가지 원칙을 정하다
대개 불사를 한다면 스님들은 두 가지를 고민하는데 하나는 ‘어떤 건물을 지을 것인가’, 다른 하나는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이다. 그런데 실상사는 그 전제가 되는 ‘불사’부터 짚어보기로 했다. 주지 소임을 보셨던 재연 스님은 “불사는 그 껍데기가 아니라 그 속에 담아야 할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처음부터 다시 살피기, 실상사의 걸음걸이는 늘 이렇게 첫걸음을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고, 그것이 실상사의 남다름일 것이다.
해인사 현응 스님, 직지사 흥선 스님, 봉은사 진화 스님, 미황사 금강 스님, 김경일 신부님, 홍익대 안상수 교수, 성균관대 정기용 교수, 성균관대 조성룡 교수, 성균관대 이상해 교수, 한국예종 김봉렬 교수, 동국대 홍광표 교수, 목포대 조경만 교수, 사찰생태연구소 김재일 님, 아름지기 정인숙 님, 서안조경 정영숙 님, 그리고 실상사가 위치한 산내면 출신의 재경 향우회장, 마을 번영회장, 약수터보살님, 작은학교 학생 등 종교, 문화, 건축계의 권위자부터 지역 주민들까지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실상사 불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했고, 그 결과 연기적 세계관의 불사, 공동체를 살리는 불사 등 불사에 관한 열 가지 큰 원칙을 정리한 불사십조(佛事十條)를 선언했다.

불사, 마을을 고민하며
좁은 법당 문제를 해결하고 승가 대중의 안정적인 수행과 거주 공간을 마련하려던 소박한 출발점은 어느덧 ‘마을과 사찰’이라는 연기적 관계로 확대되었다. 실상사로 인하여 마을이 있었고, 마을로 인하여 실상사가 있어왔기에 마을과 절은 뗄 수 없는 공동운명체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실상사가 귀농학교를 열어서 많은 귀농인들이 우리 지역에 들어와서 토착민들이 소외감을 느낀다.”고 서운해 하고, “실상사 작은학교에 우리 아이들이 보다 많이 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실상사가 만들어가는 대안적 가치가 지역 토착민들까지 포용하여야 함을 일깨워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을, 숲, 자연으로 외연을 확장하여 성찰한 다음에는 현실의 고민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 때 실상사가 그릴 불사 청사진은 어떤 것일까? 최초기 선종 가람으로서 당우의 일부는 복원할까? 실상사가 꿈꾸는 공동체 마을은 불사의 밑바탕에 어떻게 자리잡을까? 지리산 자락에서 실상사의 꿈은 진행형이다.

불사십조佛事十條
한국 전통 사찰의 모든 불사에는 불교의 기본적 세계관과 시대정신이 담겨있다. 그리하여 그 절들은 오랫동안 아름다움의 맥을 이어온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절 불사는 방향을 잃고 있다. 이러한 정황은 자칫 우리 선조가 이루어 놓은 문화유산을 우리 세대에 이르러 파괴할 지경에 놓여 우리나라 역사 문화와 불교의 앞날에 끼칠 부정적 영향이 크게 우려된다. 이에 우리는 한국 현대 불사가 올바르게 나아갈 바를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실상사 불사를 실천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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