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곳은 모두가 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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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곳은 모두가 길인 것을
  • 관리자
  • 승인 2010.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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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유희

2004년에 일본 고야산을 포함하는 기이산(紀伊山) 그리고 구마노(熊野) 권역이 하나로 묶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때, 무엇보다 중요시한 것은 ‘성지순례의 통로’라는 가치였다. 불교와 신도(神道)가 함께 어우러진 지역으로, 세 군데 성지와 성지끼리 이어지는 참배길이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미치지 않는 지역을 관통할 뿐만 아니라 걸어서 갈 수밖에 없도록 의도적으로 험난한 지역만 골라서 만들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높이도 해발 1,000미터를 넘는 구간이 적지 않았다. 간혹 자연석 돌계단이나 약간의 포장길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거칠고 웃자란 풀들로 뒤덮여 있다. 실력자라고 할지라도 가마를 탈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물론 큰 도시인 교토와 나라(奈良) 지역에서 걸어올 수 있는 통로 구실도 겸했다.

5월 하순(5.26~29)에 ‘아름지기’라는 문화재 보존운동을 하는 민간단체에서 마련한 순례길에 함께했다. 짜인 다른 일정 때문에 옛길을 충분히 걷지 못했지만, 바닷물 한 숟가락만 먹어보아도 전체 바다가 짠 것을 안다는 경전 말씀으로 위로를 대신했다.

걷다보면 쉬어야 하고 또 하룻밤을 묵어야 할 일도 생긴다. 먹는 일도 작은 일이 아니다. 일본 진언종의 개산조인 홍법공해(弘法空海, 774~835) 대사가 창건주이자 열반지인 고야산 성지를 찾는 참배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많은 사찰들이 숙방(宿房) 기능을 해야 했고 더불어 정진(精進, 쇼진)요리가 함께 발달했다. 지금도 고야산의 200여 사찰 가운데 50여 곳에서 참배객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있다. 순례 인연이 닿아 총지원(摠持院)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젊은 승려들이 음식시중을 들었다. 음식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곁들였고 통역인은 열심히 설명했다. 음식 만드는 것도 수행이고 먹는 것도 수행이라는 가치관이 반영된 깔끔한 공양이었다.

어쨌거나 정진요리도 홍법 대사가 원조인 셈이다. 당신은 음식과도 인연이 많았다. 특히 고향인 사누키(讚岐) 지방의 우동도 그가 원조라고 했다. 인구 10만 명에 700여 개의 우동집이 있는 일본 최대의 우동 소비도시로서, 전 세계의 미식가를 불러 모으고 있는 맛의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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