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지는데 갈 길은 멀고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跡記)』 번역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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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지는데 갈 길은 멀고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跡記)』 번역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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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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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유희(禪語遊戱)

드디어 신라 유식학의 대가인 원측(圓測) 스님의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跡記)』 한글번역본이 나왔다. 천신만고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번역자들과 수년 동안 머리를 맞댔고, 완성 후에도 교정 및 윤문을 여러 번 봐야했다. 700여 쪽이나 되는 대작이라 한 번 읽기만 하는 데도 적지 않는 시간이 걸렸다. 우아한 내용을 중심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흠집을 찾아내려고 경전을 보고 있으니, 이건 공부가 아니라 완전한 노동이었다. 눈이 가물가물해지도록 다섯 번이나 꼼꼼히 살피고서야 다소 안심이 되었다. 교정 때마다 앞의 교정지는 무시하고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서 거듭 보았다. 이전 교정지에 의존하면 다른 부분을 놓쳐버린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출판담당자와 마지막 석 달까지 씨름하던 책이다. 컴퓨터 화면 위에서 작업할 수도 있지만 그건 디지털 세대나 가능한 이야기다. 교정이란 종이 위에다가 붉은 글씨로 죽죽 그어가며 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날로그 세대인 나로서는 번번이 종이 인출본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파지가 한 박스 분량이 넘었다. 갑자기 기차역사에 걸려있는 KTX 광고가 생각났다.‘한 번 타면 몇 그루의 나무를 심은 것과 같다’고 하면서 친환경 운송수단임을 내세운 것이었다. 그 논리대로 한다면 교정 때문에 수십 그루의 나무를 베어 낸 셈이니 나무보살께 지심으로 참회해야할 일까지 저지른 셈이다.

번역은 제2의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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