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쿠라’ 같은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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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쿠라’ 같은 놈들
  • 관리자
  • 승인 2010.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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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선(禪)과 함께 이러구러

1분 앉으면 1분 부처

- 니시지마 와후(西禳 和夫)

주말엔 누워서 지낸다. 소파와 뒤엉켜 한가롭게 시간을 마셔버리는 게 여가선용이다. 가뭄에 콩 심듯 책을 보며 인생의 길을 찾고, 가뭄에 굶듯 텔레비전을 보며 세상의 환(幻)에 취한다. 요즘은 아무 데서도 메이저리그 중계를 하지 않아 서운하다. 불교TV까지 훑고 난 새벽녘,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휘젓는다. 가끔 일본의 여러 볼거리와 맛집을 소개하는 방송이 걸린다. ‘화려하면서도 정갈하다’, ‘인공과 자연의 콤비가 완벽하다’, ‘가장 동양적이면서도 가장 서양적이다’ 운운. 일본의 풍광엔 형언하기 힘든 아우라가 있다. 식민지배에 대한 민족적 반감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마약도 아닌 것이 교묘하게 사람을 홀린다.

다만 리포터들의 가식적인 대화는 귀에 거슬린다. ‘나는 당신에게 친절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듯한 억양엔 ‘나를 계속 귀찮게 하면 참다못해 너를 죽여 버릴지도 몰라’라는 내공이 묻어난다. 그렇다고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읽은 티를 낼 것까지는 없다는 생각. 이색적인 말투를 ‘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전쟁을 숭상하는’ 극단적 양면성의 증거로 제시한다면 견강부회다. 『국화와 칼』은 태평양전쟁 막바지, 일본 점령을 목전에 둔 미 국무부의 의뢰로 작성한 일종의 보고서다.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 일본인들의 속내를 떠보자는 심산이었다. 진주만 공습의 참상과 공포, 적개심에 물든 이성은 왜곡과 과장, 일반화의 오류에 감염되기 쉽다. 어느 시인 말마따나 급하면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하는 게 인간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칼에게 국화의 잔가지를 쳐내는 재미 이상의 것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여하튼 나의 일상은 그들과 별 관계없이 흘러간다. 꽃꽂이를 즐기지 않으며 과일은 주로 아내가 깎는다.

재작년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 취재차 5일간 홋카이도(北海島)에 머문 적이 있다.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본산인 중앙사(中央寺)는 1873년에 창건됐다. 삿포로 도심 한복판에 있는 절이다. 법당과 요사가 복도로 연결된 구조다.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가옥과 가옥을 옮겨 다닐 수 있다. 비가 많이 내리는 기후를 반영한 조치다. 내부는 일본인들이 없으면 못 사는 다다미방이다. 오색찬란한 불단(佛壇)엔 부처님께 공양하는 밥인 마지(摩旨)가 놓였다. 큼지막한 놋그릇에 쌀밥만 수북하게 담아 진상하는 우리의 풍습은 상징성이 부각됐다. 부처님의 거대한 법력을 경배하면서 보시의 푸짐함과 애틋함을 에둘러 표현한다. ‘밥이 보약’이란 해묵은 정서까지. 반면 일본의 마지는 실제적이다. 개다리소반에 밥 한 공기와 너덧 가지의 찬을 낸다. 금방이라도 먹을 수 있는 진짜 식사다. 당구공만한 밥에 갓난아기 주먹만한 찬, 일본인들의 소식 습관을 반영한다. 법당 실내 한구석에 마련된 ‘흡연실’은 양촌리 어린이가 처음 구경하는 스모나 가부키처럼 생경하다. 관념적 예경과 실용적 생활의 뒤죽박죽.

니시지마 와후는 말년에 머리를 깎았다. 출가(出家)라고 표현하기 애매한 게, 멀고 먼 산중의 절로 몸을 숨기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가족과 재산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비교적 녹록한 선택이다. 대처승 관습 덕분이다. 일본은 아들이 아버지의 사찰을 물려받고 스님이 스노보드를 타거나 고깃집을 운영해도 그다지 화제가 되지 않는 나라다. 동경대 법대 출신의 30년 ‘증권맨’ 니시지마는 스님이 되기 전부터 좌선(坐禪)에 관심이 많았다. 선가(禪家) 고유의 정결과 검소, 탐구의 자세를 경영에 접목해 유명해졌다. 사찰 주지이자 대기업의 고문이라는 특별한 이력의 내막이다. 사실 일본에는 현직에서 물러나 승려로서 여생을 보내는 오피니언리더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조금 색다른 은퇴설계 혹은 고도로 숙련된 명예욕이랄까. 이룰 것 다 이루고 누릴 것 다 누린 뒤에 말하는 무소유는 부러우면서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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