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특별하게 하는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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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특별하게 하는 그 무엇
  • 관리자
  • 승인 2010.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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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산책 /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다소 엉뚱한 제목이 달려있는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사실 제목만큼이나 조금 엉뚱한 영화다. 귀여운 삽화로 시작되는 오프닝 시퀀스는 말랑말랑한 순정만화를 떠올리게 하고 배우들의 몸개그와 썰렁한 유머, 유치한 대사들은 한없이 가벼운 코미디에나 나올 법하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아무렴 어때’라는 식의 태평스러운 분위기는 묘하게도 강한 중독성과 흡인력이 있어, 어느덧 영화 속 유유자적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강렬한 장면과 대사, 극적인 사건 없이 이야기는 흘러가지만 영화의 메시지만큼은 간결하고 명쾌하다. 느리지만 진중하고 끈기 있는 거북이처럼 영화는 일상의 소소한 가치와 의미를 진지하게 포착해 낸다.

평범과 비범의 경계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흔해빠진 참새처럼 23세 주부 스즈메(일본어로 ‘참새’)의 삶은 아주 아주 평범하다 못해 무료하다. 해외근무를 하는 남편과의 통화도 언제나 거북이 안부를 묻는 것이 전부고, 그녀의 생활 역시 거북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 이상의 특별한 일은 없다. 사건이라고 해봐야 미용실에서 손질한 머리가 이상하다거나 물에 빠진 거북이 사료가 하수구를 막히게 하는 정도일 뿐. 한편, 스즈메의 유일한 친구 쿠사쿠는 평범한 스즈메와 달리 모든 면에서 언제나 특별하다. 외모도 튀고, 취향도 튀고, 뭘 해도 운이 좋은 그녀는 장래희망 또한 거창하다.

태생적으로 평범한 스즈메는 어느 날 우연히 스파이 모집 광고를 발견하고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한다. 스파이로서 스즈메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해지는 것’이다. 즉, 본부에서 지령이 올 때까지 스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최대한 평범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그녀가 완수해야 할 훈련이자 임무다. 메뉴를 고를 때도 남들이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평범한 것으로, 장을 볼 때도 평범하게, 이불을 털 때도 평범하게. 지금까지 누구 못지않게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스즈메에게 ‘평범하게 무언가를 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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