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부총장까지 역임하셨던 법안 스님은 1974년 도미, 하버드대학 객원연구원으로 1년간 재직한 뒤, 뉴욕 원각사 주지로 취임하여 불사를 크게 일구셨다. 미국 땅에 불교대학을 세우시겠다는 원력으로 현 위치에 30만 평의 땅을 매입하셨을 뿐만 아니라, 뉴욕 대학(New York University)에서 ‘원효의 화쟁사상 연구(Wonhyo’s Theory of Harmonization)’로 박사학위도 취득하셨으며, 뉴욕 지역에 불자들의 신심을 일으키고 불법의 씨앗이 퍼지도록 확실한 토대를 마련해 주셨던 분이다.
법안 스님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말까지 활발히 활동하셨다. 그러나 1988년 맨해튼에 있던 절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병환으로 쓰러지셨다. 그때부터 원각사는 기울기 시작했다. 스님에게는 상좌가 없었던지라 여러 스님들이 오고 가셨지만, 그럴 때마다 어려운 상황이 가중될 뿐이었다.
내가 원각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인 2004년 1월이었다. 당시 위스콘신 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되돌아가는 길에 법안 스님께 문안인사를 드리려고 원각사를 방문했었다. 그런데 법당과 요사채는 모두 잠겨 있었고 이 큰 도량에 스님과 시봉하는 보살님 한 분만이 절을 지키고 있었다. 경내에 수십 채가 넘던 건물들은 대부분 퇴락되어 하룻밤 지낼 수 있는 방사도 거의 없었다. 매주 3~4백 명씩 나오던 일요법회였다고 했는데, 법회를 집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법당에 들어가 보니 노보살님들 일곱 분 정도만 와 계셨다. 기도와 법회를 해주실 스님이 없어서 매주 염불 녹음 테이프을 틀어놓고 기도하시고 돌아가신다는 것이다.
‘미국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어떻게 스님이 없다고 절이 이렇게 퇴락되도록 방치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온통 머리 속에 차 있을 때, 어느 노보살님이 “우리마저 절에 나오질 않으면 원각사는 문을 닫을 거여!”라는 말씀이 귓가를 세게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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