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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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힘내라
  • 관리자
  • 승인 2010.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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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선(禪)과 함께 이러구러

[ 선택은 자리를 남긴다 ]

입을 열면 그르치고 입을 닫으면 잃을 것이다.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명언이다. 태어남(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 곧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시도 때도 없이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무언가를 고르고 버리는 일이 인생사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것인지 버스를 이용할 것인지, 점심 메뉴는 무얼 먹어야 할 것인지, 퇴근길엔 술자리로 샛길을 탈 것인지 곧장 집으로 갈 것인지, 잠들기 전 하루를 정리하며 담배를 피울 것인지 건강을 생각해 관둘 것인지, 순간순간 갈림길에 선다.

하나를 선택했을 때 그것 때문에 포기한 가치의 평가액, 그러니까 기회비용이 클수록 선택은 한층 무겁고 복잡해진다. 담배를 끊을 것인지 말 것인지, 소나타를 살 것인지 토스카를 살 것인지, 무리를 해서라도 지금 재개발 딱지를 살 것인지 분수를 맞추다가 훗날을 기약할 것인지, 과감하게 자살할 것인지 한 번 더 속는 셈 치고 꾸역꾸역 견딜 것인지, 전전긍긍에 좌충우돌을 쌓고 노심초사를 얹는다. 선택의 표정은 제각기 달라도 선택이란 얼굴은 어디로 도망가지 않는다. 적극적인 선택과 본의 아닌 선택, 익숙한 선택과 낯선 선택이 있을 뿐. 무표정도 표정이듯 선택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선택이다. 어찌 됐든 이전과는 다른 세계와 조우한다.

아침식사로 늘 먹던 김치찌개 대신 무심코 카레라이스를 먹었다고 위암에 걸리진 않는다. 모든 선택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란 의미다. 하지만 적어도 몇 가지 선택은 인생의 판도를 뒤흔든다. 이를테면 진학, 취업, 결혼 따위의 통과의례에 수반되는 제비뽑기. 어떤 산가지를 집느냐에 따라 사르트르의 기발한 수사에 무릎을 치는 사람과 땅을 치는 사람이 나뉜다.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학벌에 맞지 않는 직장은 고역이다. 중풍과 치매를 동시에 맞은 시아버지를 바라보는 기분은 암담하다. 하여 사람들의 현명한 선택을 돕기 위해 각종 특목고와 입시학원, 뉴타운과 중매업체들은 오늘도 얼굴에 분칠을 하고 한바탕 호객을 벌인다. ‘잘난’ 대학, ‘잘난’ 명함, ‘잘난’ 처가…. 당신을 최대한 비싸게 팔아주겠다는 속삭임은 달콤하다.

사소한 선택이 엄청난 결과를 부르는 경우도 있다. 평소보다 10분 빨리 회사로 출발하는 바람에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의 성수대교’를 모면한 남자. 신상 스커트를 단념한 대가로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의 삼풍백화점’이 비호한 여자. ‘압도적인’ 불륜이 들통 나 세계만방으로 망신살이 뻗친 타이거 우즈에게도 애도를 표하며 한 마디. 그가 첫 번째 내연녀에게 날렸을 최초의 ‘뻐꾸기’가 지금의 파국을 예상할 만큼 명석했을 리 없다. 선택은 인연을 낳고 인연은 다시 선택을 재촉한다. 인(因, 주체적 의지와 노력)이 아무리 튼실해도 연(緣, 주변상황의 변수)이 거칠면 만족할 만한 결실을 얻기 어렵다. 얼핏 스스로 선택을 하는 것 같지만 중요한 선택일수록 선택을 강요받는 것이라 보는 게 옳다. 제대로 미친 한량이 아니라면, 대학에 안 갈 수 없고 돈을 안 벌 수 없고 결혼을 안 할 수 없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사통팔달로 드나들며 인간을 가지고 노는 선택.

선택은 ‘자리’를 남긴다. 장삼이사들이 진학과 취업과 결혼 앞에서 하염없이 주판을 튕기는 이유다. 자신의 처지와 능력, 배경과 인맥을 꼼꼼히 셈하며 가장 푸근한 좌표에 몸을 담는다. 값지고 빛나는 것들로 뒤웅박을 채우기 위해 10대에는 ‘야자’에 시달리고 20대에는 면접에 매달리고 30대에는 ‘라인’을 타려 애쓴다. 자리를 가진 사람은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약자의 삶을 거덜 내고, 자리가 없는 사람은 자리를 갖기 위해 강자의 목덜미를 노린다. 저급한 이름으로 회자되고 비루한 형상으로 전락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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