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하게 산다는 것
상태바
선(禪)하게 산다는 것
  • 관리자
  • 승인 2010.01.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삶, 선(禪)과 함께 이러구러

마음 마음 마음,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놈.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제 몸인 양 끌어안다가도, 한번 삐치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조차 남에게 배려하지 않으니, 원.

- 보리달마(菩提達摩), 『혈맥론(血脈論)』

가장 고요한 순간에 관한 단상. 여느 때처럼 건조하고 따분한 강의실, 어느 교수가 산중에 박힌 작은 절집을 떠올려 보라 권했다. 까무룩. 상상만으로도 편안해지는 적막이다. 졸음과도 죽이 맞아 마음이 한참 깔아질 무렵, 교수는 한 가지 ‘옵션’을 걸었다. 마냥 정적이 흐를 때와, 가느다란 죽통을 타고 계곡물이 똑똑 떨어질 때, 어느 때가 더 조용하겠느냐고 물었다. 자신은 후자를 택하겠단다. 곰곰 따져보니 그럴 만도 했다. 물론 정답이 따로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외려 틀림에 대한 공포 혹은 맞음에 대한 기대가 애당초 성립되지 않아, 한결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질박한 심정으로 접근할 수 있어 반가운 질문. 소리는 침묵을 깨는 것인가. 아니면 침묵을 완성하는 것인가.

하지만 생각에 현실이 끼면 사정은 달라진다. 세상은 넓고 문제는 많다. 법률과 제도, 상식과 관습으로 대충 덮어둔 함정들이 가득하다. 심연과 맞먹는 함정. 작정하고 파헤친다손, 바닥을 만나기란 장님 혼자서 동물원 코끼리 구경 가기다. 생각이 빚은 함정은 형체가 없으니까. 해답은 죽어도 나오지 않고, 변죽만 줄곧 두드리다 손이 나간다. 객관적 현상과 주관적 마음의 동거는 혼수를 준비하는 예비부부와 같다. 뭐 하나 쉽게 합의하질 못한다. 메이저리그에서 비로소 성공한 추신수와 프리미어리그에서 여전한 활약을 펼치는 박지성과도 처지가 비슷하다. 따로 논다.

예컨대, 원수를 사랑하는 게 사랑인가, 아니면 원수를 응징하는 게 사랑인가. 가족을 몰살한 사내의 목숨을 갈가리 찢어놓는 일과 법의 심판을 잠자코 기다리는 일 가운데 무엇이 진정한 인간의 도리인가. 유혹에 넘어간 뒤에 주어지는 짧은 쾌락이 행복인가, 아니면 유혹을 뿌리친 뒤에 주어지는 오랜 권태가 행복인가. 용의 꼬리로 사는 자에게 줄을 댈 것인가, 뱀의 머리로 사는 자에게 빌붙을 것인가. 한참 전에 퇴사한 옛 직장동료가 결혼한다면 축의금은 3만원을 내는 게 옳은가, 5만원을 내는 게 옳은가. 아니면 입을 닦아버리는 게 합리적인 처신인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출가한 스님과 무학으로 자수성가한 기업인 중에 누가 더 대단한가. 금연 표지판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용기와 엄마 지갑에서 몰래 1,000원을 빼는 용기가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조중동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와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미디어오늘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 사이의 안드로메다, 거기에도 생명이 살까. 살 수 있을까. 죽음은 삶을 잔인하게 파괴하는 것인가, 아니면 삶을 더욱 눈부시게 만드는 것인가.

술에 만취한 생각들이 여염집 담장을 타다가 넘어지고, 아무 여자에게나 명함을 돌린다. 얘기가 길어진다. 온갖 난봉을 일삼던 마음, 기어이 경찰에 붙잡힌다, 는 설정으로 마무리하겠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저 마음이 움직인 것인가.’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