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나는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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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는 뭔가?
  • 관리자
  • 승인 2010.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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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모 / 혜암 스님의 제자 여연 스님
▲ 혜암 스님

백련사에서 만난 여연 스님은 편안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접고 사람들 이야기도 내려놓고 스님은 창문을 활활 열어젖혔다. 열린 문 밖으로 시야는 한달음에 강진만 바다까지 달려갔다. 눈 아래 산이요 산 아래 바다요. 백련사 망경루에 올라 결사의 뜻을 벼렸을 옛 스님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멋지지?” 여연 스님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띠며 차 한 잔을 권했다. 맑게 고인 찻물이 입에 닿기도 전에 향긋하다. 스님이 직접 덖고 말려서 만든 백련사 선차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은 차를 만나면 좋은 사람이 먼저 떠올라. 예전에는 좋은 차가 생기면 노장 생각이 먼저 났었어. 그런데 우리 스님은 차도 싫어하셔. 몇 번 갖다드렸는데 한 번도 좋은 소리 못 들었어. 차는 쳐다도 안 보시고 그저 ‘공부하다 죽어라, 죽을 각오로 공부하라’는 말씀만 하시는 거야. 허허. 그런데 그게 쉽나? 솔직히 그때 나는 공부하다 죽을 마음이 없었거든. 세상 공부도 더 하고 싶고, 경 공부도 더 하고 싶었거든. 그런데 자꾸만 ‘공부하다 죽어라, 공부하다 죽으면 수지 맞는다’고 하시는데, 정말 나야말로 죽을 노릇이었지. 내가 어쩌자고 우리 스님한테 출가했나, 한숨이 저절로 났어.”

여연 스님은 한동안 혼자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수행자의 본본사 한 길밖에 몰랐던 스승과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를 좋아했던 괴짜 제자. 그래서 추억도 그리움도 더 많다.

조실을 가르치러 다니는 수좌, 혜암 스님

여연 스님의 은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전 종정 혜암 스님이다. “공부하다 죽어라!” “일의일발(一衣一鉢)로 살아라” “감투를 받지 마라”, 지금도 귓전에 쩌렁쩌렁하게 남아있을 만큼 혜암 스님이 간곡하게 남긴 가르침이다. 실제로 당신이 그렇게 살다 갔다. 행자시절 공양주를 때려치우고 토굴로 들어간 날부터 원적에 들던 날까지 죽기를 각오하고 정진했던 수좌였다. 언젠가 평생 장좌불와를 한 뜻을 묻자 혜암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 일주일 안에 성불하지 않으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날도 그렇게 시작했다. 매일 그렇게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오늘도 장좌불와를 한다. 특별히 결심한 바 없다.”

혜암 스님은 그렇게 법랍 55년을 하루를 살듯 치열하게 살았던 이 시대 최고의 선지식이었다. 그만큼 스님의 수행일화도 많다. 범어사 동산 스님 회상에서 안거를 났을 때, 동산 스님이 혜암 스님 단 한 사람에게만 안거증을 준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또한 전강 스님도 혜암 스님의 선지를 알아보고는 “혜암 수좌는 배우러 다니는 수좌가 아니라 조실을 가르치러 다니는 수좌야” 하며 대단히 기뻐했다고 한다. 스님은 그야말로 경봉, 인곡, 금오, 효봉 등 당대 최고의 선지식과 당당하게 법거량을 나누며 선사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기쁨으로 들뜨게 했던 ‘사자새끼’였다.

지독하게 말 안 들었던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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