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곧 수행도량이니
상태바
세상이 곧 수행도량이니
  • 관리자
  • 승인 2009.12.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남, 인터뷰 / ‘행복한 이주민센터 상임대표’ 정호 스님

굳이 그 방의 특징을 꼽자면 가끔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행복한 이주민센터’를 드나드는 사람들의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오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조용하다 싶더니 이번에는 계단 머리에서 떠들어 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 방을 둘러싼 환경이 못마땅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방이 시끄럽다는 이유로 주인에게 타박을 받은 적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싫어할 리 없는 정호 스님이 그 방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포교당에서 이주민센터까지

정호 스님은 번잡한 속세에서의 포교 활동에 뜻을 둔 스님이다. 그의 주된 활동 무대인 경기도 오산은 그래서 그에게는 수행도량이기도 하다. “오산이 인구 5만도 안 되는 읍이었을 때 들어왔으니까 지금까지 한 20년 정도 살았군요. 뭐 오산에 대해서는 거의 다 안다고 봐야지요.” 평택 만기사, 괴산 채운사 주지를 지낸 후 오산에 포교당을 세웠던 것이 이곳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스님은 포교당을 꾸려 가는 한편 오산화성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오산바르게살기실천협의회21 공동의장 등을 지내며 지역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해 왔다.

그러다가 정호 스님은 이주민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거기에는 엉뚱하게도 개신교의 공(?)이 컸다. “개신교 쪽에서 먼저 외국인노동자센터를 운영했어요. 그런데 불교 국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거기를 다니다가 개신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더러 있더라구요. 그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서 선교를 하게 되면 그쪽 나라의 불교가 빠르게 잠식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러한 생각이 발단이 되어 정호 스님은 2007년 6월에 행복한 이주민센터를 열게 되었다. 이주민의 숫자가 100만을 넘어선 지금, 이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중대한 사회적 과제가 되었다는 것이 정호 스님의 생각이다. 교육, 문화, 상담, 복지, 공동체 지원 등 이곳에서 제공하는 여러 프로그램 가운데 정호 스님이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한글 교실이다. 한글을 모르면 한국 사회에 동화되기 어려운 것은 물론, 각종 정보로부터도 소외되기 때문이다. 정호 스님의 관심은 이주민 1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태어난 이주민 2세에게도 미치고 있다.

“엄마가 한국어에 능숙하지 못하다 보니 아이들도 한국어 발음이 어눌하기 십상입니다. 게다가 피부색까지 다르니 학교에서 왕따가 되는 경우가 많지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마음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대안학교 같은 것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산에 자리 잡으면서 열었던 포교당을 아직까지 운영하고 있다. 시간이 꽤 흐른 만큼 규모도 많이 성장했을 것 같지만 포교당의 크기는 처음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35평에 불과하다. 제자리 걸음만 걷는 듯한 모양새가 신경 쓰일 법도 하지만 정호 스님은 개의치 않고 있다.

“건물을 크게 짓는다든가 신도들을 많이 끌어 모은다든가 하는, 이른바 ‘공격적인 경영’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평생 동안 한 사람에게라도 제대로 포교를 한다면 그것으로 부처님 은혜를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교라는 것은 양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