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미술] 호법과 호국, 사천왕 신앙과 사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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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미술] 호법과 호국, 사천왕 신앙과 사천왕
  • 유근자
  • 승인 2009.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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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미술
▲그림1>> 사천왕이 붓다에게 발우를 바치다, 2~3세기, 간다라, 페샤와르박물관, 파키스탄

사천왕신앙과 석가모니 부처님

들깨꽃이 피면 큰 비가 오지 않는다는 말씀을 시어머니로부터 들은 지 여러 날, 우리집 작은 화분 속 들깨도 꽃을 피웠다. 비가 유난히 자주 내렸던 지난 여름, 부산에 있는 범어사 대웅전 부처님 상을 조사하러 갔다. 조사 중인 법당 안은 무척이나 덥고 어수선했다. 허나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서 뵈었던 네 분의 천왕님은 ‘범어사는 내가 지키마! 이곳을 지나 부처님 세계로 가는 모든 이들 또한 내가 수호해 줄 테니 걱정일랑 내려 놓아라! 나라 걱정도 하지 마라…’ 등등 수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계시는 듯했다.

처음 사천왕을 만나는 이들은 무척 무섭다고 한다. 들어올린 손으로 뺨이라도 내리칠 듯했고, 특히 모든 무서움은 부릅뜬 두 눈에서 나오는 듯했다고 어릴 적 절에서 느꼈던 기억들을 이야기한다. 사천왕은 부처님을 만나러 절에 오는 이들에게 좀더 상냥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맞아주면 좋을 텐데,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짓고 계시는지 들깨꽃 향기를 맡으며 사천왕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석가모니 부처님이 도리천에 계시다가 흰 코끼리의 모습으로 마야 왕비의 태 속으로 들 때, 사천왕은 부처님을 수호하기 위해 도리천으로부터 함께 내려왔다. 부처님이 탄생할 때에는 사천왕이 싯다르타 태자를 받았으며, 출가할 때도 말발굽을 사천왕이 받들어 부처님의 출가를 도왔다. 깨달음을 얻고 난 후에는 두 상인이 부처님께 바친 음식을 받을 발우를 올리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당시 인도인들이 부처님의 일대기를 미술로 표현할 때 중요한 소재가 되었기 때문에, 인도 고대 초기 미술에서 사천왕은 주로 불전도(佛傳圖) 속에 등장한다(그림 1).

사천왕신앙과 금광명경

사천왕은 불보살의 세계를 수호하고 불법을 받드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호세신(護世神), 호법신(護法神), 방위신으로 신앙되었다. 그들은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의 중턱에 살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제석천을 섬기며 사방사주(四方四洲)를 수호한다. 사천왕의 지위는 최하위에 속하지만 불가항력의 적을 물리쳐 준다는 특유의 신통력 때문에 오랫동안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사천왕신앙은 사악한 것으로부터 신성한 것을 보호하고 침략자로부터 수호하는 역할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호국신앙과 연결되었고, 종교적으로는 사찰을 수호하는 호법신으로, 민간에서는 질병과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불교가 도입되면서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왕들은 제석천(帝釋天)과 그의 권속인 사천왕이 국가를 지키고 왕실을 보호하는 신이라고 여겨 신앙했고, 조선시대에는 주로 천왕문에 모셔 호법과 호국의 임무를 수행케 했다.

사천왕신앙은 4세기 경 북량의 담무참이 번역한 『금광명경(金光明經)』「사천왕품」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금광명경』은 국가를 보호하고 백성을 편안케 한다는 안민(安民) 사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인왕경』,『법화경』과 함께 호국삼부경(護國三部經)으로 일컬어졌다. 「사천왕품」에 의하면 사천왕은 모든 재난으로부터 국가와 백성을 보호한다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사천왕신앙 역시 호국사상으로 연결되었다.

사천왕은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 또는 비사문천(毘沙門天) 등 네 분의 천왕을 말한다. 이 네 분의 천왕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천왕이라고 통칭한다. 사천왕은 각각 두 명의 심부름꾼을 두는데 동방 지국천왕은 건달바와 비사사를, 남방 증장천왕은 구반다와 피려다를, 서방 광목천왕은 용과 부단나를, 북방 다문천왕은 야차와 나찰을 둔다.

사천왕은 처음부터 무서운 모습이었을까?

 

아니다. 중인도 바르훗(Bhahut) 탑 주위를 둘러싼 난순 조각의 문 입구에서 멋진 남성의 모습을 한 사천왕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인도 고대 미술 가운데 걸작품이다(그림 2). 고대 인도인들은 사천왕을 당시 최고의 귀공자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다. 머리에는 터번을 쓰고 장신구를 몸에 걸치고 나풀거리는 숄 같은 천의(天衣)를 몸에 둘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친숙함을 갖게 하였다.

사천왕의 부드러운 모습은 중앙아시아를 지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호탄국에서는 국왕이 바로 사천왕 가운데 북방을 지키는 비사문천의 아들이라는 건국신화가 만들어지면서 비사문천 신앙이 강해졌고, 호국신앙과 결부되면서 무서운 형상의 사천왕이 등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서운 형상을 한 사천왕은 이후 자연스럽게 밀교의 전래와 함께 불교국에 수용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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