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아는 님 가운데 으뜸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장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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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아는 님 가운데 으뜸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장로니
  • 관리자
  • 승인 2009.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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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제자에게 배운다

불교 교단에서 비구니 스님으로 가장 먼저 부처님께 귀의한 수행자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이다. 앙굿따라니까야(A1:14:5)에서는 “수행승들이여, 나의 구참 비구니 제자들 가운데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으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 다른 번역서에서는 “나의 여제자 수행녀 가운데 마하빠자빠띠는 세월을 아는 님 가운데 제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따미 장로니는 불교 교단 성립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고따미는 출가 전 석가모니 부처님을 양육한 양모였기 때문이다. 또한 부처님의 아버지로 석가족의 왕이었던 슛도다나 대왕의 두 번째 왕비였다. 그리고 부처님의 어머니 마하마야 왕비의 여동생이었다.

고따미 장로니는 마하마야 왕비와 마찬가지로 꼴리야족 출신이었으며, 데와다하 숩빠붓다(suppabuddha) 가문의 딸로 태어났다. 마야 왕비가 세존을 출산한 지 7일 만에 돌아가시자, 뒤를 이어 슛도다나 대왕과 결혼하여 세존의 계모가 되었다. 그리고 슬하에 아들 난다와 딸 루빠난다(혹은 쑨다리난다)를 낳았다. 그녀의 아들과 딸도 모두 출가하여 세존께 인정받을 정도의 덕 높은 수행자들이 되었다. 고따미는 자신이 낳은 아들과 딸은 유모에게 맡기고, 자신은 세존을 돌보는 데 모든 정성을 다하였다고 한다.

고따미 장로니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것은 슛도다나 대왕의 서거 이후의 일이다. 대왕이 죽고 나서 얼마 후 큰 가뭄이 발생하고 석가족과 꼴리야족 사이에 로히니 강물 때문에 분쟁이 발생하였다. 이 분쟁을 중재하러 부처님이 카필라 성을 방문하였을 때 석가족의 남자 500명이 출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때 출가한 남자들의 아내 500명도 출가할 것을 결심하였다. 고따미 장로니가 여인들을 이끌고 웨살리에 당도한 것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여인의 출가를 허락해 줄 것을 간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3년 동안 고따미를 비롯한 석가족의 여인들이 맨발로 지내면서 수행을 하자 아난 존자가 부처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여 수행녀들의 교단 입성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비구니 승가가 형성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가장 나이가 많았으며 열심히 수행하고 있던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장로니가 중심이 되어 비구니 승가를 이끌어 나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순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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