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정신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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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정신건강
  • 관리자
  • 승인 2009.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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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과 정신위생
1960년도를 기점으로 해서 우리나라에도 4.19학생혁명이 일어났거니와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생들도 격렬한 반정부 시위를 벌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조금 시기가 늦긴 했으나 우리나라에서 6.3사태 등이 일어날 무렵, 미국에서는 월남전을 반대하는 반전학생 데모가 판을 치게 되었고 마침내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수치스러운 철수를 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1970년대의 중국의 문화혁명은, 학생들이 당의 권위마저 팽개쳐버린 반사회적 운동이었다. 이렇게 보면 20세기의 후반기는 그야말로 기존사회의 체제, 전통, 질서 등에 대한 전면적 도전이 일어난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어째서 이런 반문화(Anti Culture), 반사회(Anti Social), 반질서 등의 운동이 세게 도처에서 일어나야 했는가? 물론 한 마디로 답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히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인류가 쌓아놓은 종교, 도덕, 가치체계 등이 무너지게 되었던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페루니쿠스의 지동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등은, 당시까지 절대적 권위를 가졌던 천주교 교리에 대한 일대 충격을 안겨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19세기에 와서 니체와 C. 다윈 그리고 정신분석의 창시자 S.프로이드 등은 그나마 비틀거리며 서있던 서양의 신을 완전히 넠.아우트 시킨 셈이다. 특히 프로이드의 무의식적 성욕설, 리비드설 등은 종전까지의 서구의 위선된 도덕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린 결과를 가져왔다.

20세기를 지나오면서 서양인들은 거추장스러운 도덕율, 규범, 신앙의 가르침, 철학적인 제시 등 보다는 자신의 본능적인 욕구 제촉심, 자아충족심 등에 사로 잡히게 된 것이 사실이다. 바라는 일은 무엇이나 충족시키자.

자신의 내적인 갈등이나 욕구는 억압할 필요가 없다. '할수있는 일이면 다 해보자'하는 것이 서양인들의 공통된 심리로 부각하게 된 것이다. 오토 페니켈(Otto Fenichel)도 주장한 바와 같이, 백년 전 프로이드 시대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너무나 억압했고

도덕율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기 때문에 마침내 노이로제가 왔던 것이지만, 20세기를 지나 오면서는 사람들은 너무나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 했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백년 전까지만 해도 성욕을 너무 참고 억압한 결과로 히스테리 증상이 왔던 것인데, 오늘날은 너무나 성개방 여권운동등에 치우친 결과 남녀 간의 갈등, 대립, 상호불신 현상이 오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백년 전에는 웃 어른, 권위체, 상급자 등의 앞에서는 얼씬을 못하고 자신의 주장을 펴지 못했으며, 심지어 말도 잘하지 못 했기에 불안신경증이 왔던 것인데, 오늘날에 와서는 권위체제를 무시하며, 아버지, 스승, 교수, 사장 등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풍조가 만연되었고, 너무나 자기주장을 펴기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잉 욕구, 과잉 주장, 과잉 투쟁의 현상이요, 집단적 데모의 심리와도 연결되고 있다. 그 결과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되었고, 사람과 사람 간의 신의(信義)가 사라지게 되었으며, 결국은 서로 간에 불신(不信)하는 풍토가 자리잡게 된다.

때문에 상대가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면 무자비한 보복을 하게 되고, 오직 힘과 보복책에 의해서 인간관계와 사회적 관계, 나아가서는 국제관계마저 유지되고 있는 결과가 되었다.

예컨대 세계평화도 국가 간의 신의 성실한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소간의 엄청난 상호 보복력 때문에 전쟁이 일어 나는 것이 방지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백년 전과는 정반대로 오늘날의 정신적 갈등,

노이로제의 문제는 결국 도덕의 공백에서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이 너무나 자기 분수를 모르고 자기 주장을 하며, 일방적인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상대를 무시하며, 욕심에 사로잡혀서 현실적인 의무를 외면하기 때문에 노이로제가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백년 전 프로이드의 시대만 하더라도 정신분석 치료를 행할 때는 환자로 하여금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나 자유롭게 말하도록 유도하는, 이른바 자유연상법(自由聯想法)을 썼던 것이다. 당시의 환자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깊이 쌓아 두었던 비밀을 의사 앞에서 털어놓으므로 해서 겨우 마음이 후련해짐을 맛보았던 것이고, 병은 낫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왕서는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고, 너무 많은 것을 노출시키고, 너무 많은 것을 주장하는 데서 병이 오고, 갈등이 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바로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우리가 서양 교과서에 쓰여 있는 대로 정신치료를 행하게 되면 무엇인가 문제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정신위생을 도모하고, 정신치료를 행하는 방향은 새로운 도덕율을 다시금 확인하는 데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본다.

개인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신병이나 노이로제의 치료를 하는 지름길은 물론 그의 마음속의 갈등, 왜곡, 방어, 콤플렉스 심리 등의 정체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새로운 도덕률, 양심, 가치관을 심어 주고,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해주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로 되었다.

'부부 갈등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도 백년 전과는 달리 우리는 서로 참는 법, 자신을 낮추고 겸양하는 법, 상대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법 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직장에서의 정신위생의 문제도 이제 그 방향을 바꿀 때가 된 것이다. 물론 활발한 대화를 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주장하고, 노사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보다는 묵묵히 일하고,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성실하게 봉사하며, 자신의 불편 부족감을 참아내며, 일 자체에서도 기쁨을 느끼는 새로운 노동 윤리의 확립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물론 기업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백년 전 초기 자본주의의 발달 단계에서나 볼 수 있었던 무한한 이익 추구, 자본 축적, 기업확대 등의 심리에 사로잡히게 되면 결국 불행을 면할 수 없고 노이로제에 빠지게 된다.

기업가도 기업을 하는 그 자체가 자신의 욕구 충족에 목적이 있지 않고, 기업의 발전을 통한 사회에의 공헌을 하며, 많은 종업원을 보다 더 행복하게 해주는 데 목적을 둔다고 하면 새로운 기업 윤리, 기업 풍토의 도덕률이 서게 되고, 자연히 더욱 건전한 발전이 오게 될 것이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현대에 와서는 우리가 본능적 요구보다는 도덕율을 되찾는 일이 급선무란 것을 알게 된다. 새로운 양심, 새로운 기업 윤리, 새로운 노동 윤리, 그리고 새로운 시민정신의 정립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곳이 바로 오늘 날의 한국사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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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창 ; 1.경남 거창 출생 2.연세대 의대 졸업  3.미국 베데스타 해군병원 근무  4.서울대학원 의학박사 학위 5.한국 사회병리연구소장  6.백 상창 신경정신과 원장  7.저서; 김일성의 정신분석, 이 어둠에 빛이 있다면.  역서;프로이드 심리학. 석가. 마르크스. 예수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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