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 창간 50주년] 성스러운 감동으로 충만했던 어느 봄날
상태바
[불광 창간 50주년] 성스러운 감동으로 충만했던 어느 봄날
  • 월주 스님
  • 승인 2024.06.18 09: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시 보는 불광 ⑥ 1991~1993
나의 인연 이야기 | 글. 송월주 스님(금산사 회주)

출가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내가 새삼스레 불교와의 인연을 얘기하자니 자못 마음마저 새록새록 해진다.

나는 전형적인 유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엄부(嚴父)께서는 서원에서 초헌관(初獻官)도 하시고 수헌(首獻)도 하셨던 유학자셨다.

물론 그러한 와중에서도 어머니나 형수께서는 사월 초파일이면 가까운 절에 가서 등불도 켜고 정초불공도 드리는 신심을 갖고 계셨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유교적인 가풍 속에서 유교의 생활 가치관을 습득하며 내 유년기를 보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불교와의 인연이라면…. 국민학교(초등학교-편집자 주) 4학년 때의 일이 불현듯 생각난다. 나는 정읍군 산외면에 있는 산외국민학교를 다녔었다. 4학년 때 우리 학교에서 큰재를 넘어 35리 거리에 있는 김제 금산사로 봄소풍을 갔다. 길가에는 꽃이 만발하였고 눈부신 햇살이 부서지는 금산사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단청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건물들, 높디높은 3층의 미륵전에 들어갔을 때, 성스러움 바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미륵삼존불을 뵈면서 내내 경이로움과 성스러운 감동으로 충만했던 것 같다.

당시에 그토록 강렬하게 내 가슴속에 새겨진 금산사에 대한 감동이 아슴아슴 흐려질 바로 그 무렵에 나는 또 한 번 절에 갈 수 있었다. 국민학교 6학년 졸업기념 수학여행을 내장사로 간 것이다. 산세가 수려하고 단풍 곱기로 유명한 내장사는 어린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종소리, 풍경소리, 목탁소리가 왜 그렇게도 나의 마음을 울렸는지…. 그 고요한 절 분위기 속에서 나는 말할 수 없는 경건함을 느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듯한 느낌과 더불어 부처님에 대해 공경하는 마음도 어렴풋이 들었다.

그 후 나는 서울서 중학교에 다녔는데, 내가 다니던 중동중학교는 조계사 옆에 있었다. 나는 점심때에 시간이 나면 절 마당에 가서 놀기도 하고 방과 후에는 절에 들러서 경내를 돌아보는 것이 내 일과가 되었다. 웅장한 조계사 법당을 바라보면서 ‘야, 불교가 참으로 대단하구나. 불교는 바로 우리의 뿌리 깊은 전통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곤 했다. 

그러다가 6·25사변이 나서 고향으로 내려왔다. 6·25사변 후 정읍농고를 졸업하고 다시 서울에 올라와 시립농대를 다녔는데 당시에는 사회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전쟁 피해복구가 한창이었고 휴전상태인 남북 관계는 냉전이었으며 정치적으로는 여야 간에 극한적인 대립을 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팡질팡할 때였다. 나 역시 그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많은 번민과 좌절을 함께 겪으며 갈등의 나날을 보냈다. 한 마디로 암울한 청년기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청년들의 모임에서 개최하는 불교 강좌가 있다 해서 조계사에 들렀을 때였다. 그런데 거기서 출가 승려가 된 국민학교 동창을 만난 것이다. 그 친구, 혜정 스님과의 만남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해 여름방학 때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친구, 혜정 스님이 수행하고 있던 법주사에 휴양차 찾아갔다.

법주사에서 한 달 동안 지내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물 맑고 산세 수려한 자연경관은 물론 스님들 수십 명이 함께 사는 모습이 너무나 좋아 보였다.

새벽 예불드릴 때 수십 명이 하나 된 음성으로 울려 퍼지는 그 경건함과 서로서로 합장하고 미소 짓는 모습이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는지 모른다.

세상의 모습, 생존경쟁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듯한 모습과 너무도 다른 출가수행자의 모습에 반해서 나는 출가를 했다.

효봉, 동산, 청담 스님과 함께 한국불교정화운동을 주도했던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서 그 후도 줄곧 수행도 하고 경도 배우면서 불교정화하는 데 힘을 보탰다.

화엄사·송광사·금산사 등의 주지 소임도 맡았으며 조계종 총무원장도 지내면서 내가 주력한 것은 대중 속에 불법을 펴는 것이었다. 승가는 너무 수행에만 치우치고 재가는 기복에만 치우치는 한국불교의 흐름을 바꾸려고 불교회관을 짓고, 유치원을 설립하는 등 포교사업에 힘썼으나 큰 흐름이 그리 쉽게 변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나의 불교 인연 이야기를 다 쓸려면 한도 끝도 없다. 나와 불교의 귀한 인연을 평생토록 제대로 회향하며 살기 위해 나는 오늘도 부처님전에 서원드린다. “환경문제·인권문제·통일문제·복지문제 등 사회 각 분야에 함께 나누는 불교, 뜨거운 자비행을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참된 불제자이게 하소서….”

 

*1993년 2월호(통권 220호)에 실린 월주 스님의 글입니다. 월주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했으며 글을 쓸 당시 영화사 회주, 금산사 회주,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 경실련 공동대표, 경불련 회장, 조국평화통일 불교인협의회 회장, 공해추방운동 불교인 협의회 회장, 공명선거실천 시민운동협의회 상임공동대표로서 사회를 적극적으로 구제하고 계도하는 자비행을 실천했습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윤진한 2024-06-19 02:52:46
집안 내력은 잘 모르겠음. 한편, 불교 Monkey 일제강점기의 종교정책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대처할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3464014560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