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와 중생이 한 마음이니 거기에는 추호도 다를 것이 없다.
이것이 허공과 같아서 허물어질 수도 없고 더러워질 수도 없다.
우리들은 흔히들 중생을 자처하고 부처님을 바라보며, 부처님과 중생 사이에는 천 만리가 넘는 거리감을 가지고 있다. 모든 공덕을 한 몸에 지니신 부처님을 우러러 보며 스스로 복이 엷고 덕이 부족하고 지혜가 없으며 힘이 미약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경건한 불자의 자세라고 할 사람이 혹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부처님 법에 아직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만져질 수 있는 형상만을 인정하는 범부의 소견인 것이다. 부처님을 생각 하더라도 신통광명 자재하고 三十二相이 구족한 부처님의 형상적인 덕상을 인정할 뿐 참 부처님은 모르고 있다
경 말씀에 “만약 빛깔이나 형상으로 나를 찾아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 하는 것이니 여래는 보지 못하느니라”고 하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와같이 형상이나 빛깔에 속거나 매달리는 것을 경계 하신다. 형상인 부처님을 보지말고 형상인 세계를 보지않고 형상인 중생을 보지않을 때 비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그만치나 이해가 가는 것이다. 부처와 중생은 판이 하다고 하는 생각들이 범부로 하여금 언제까지나 고통을 헤매게 하는 근본이다.
부처와 중생이 한마음이니 거기에는 추호도 다를 것이 없다. ‘부처도 한 마음이요 중생도 한 마음이다. 한 마음이 부처며 중생이다. 따라서 부처가 부처 아니며 중생이 중생이 아니다. 중생이 부처며 부처가 중생이다. 부처와 중생이 본시 한 물건이며 한 마음 뿐인 까닭이다. 이것은 마치 허공 과도 같다. 허물어질 수도 없고 더러워질 수도 없다. 번잡할 수도 없다.’
부처와 중생은 판이하다고 하는 생각들이 법부로 하여금 언제까지나 고통을 겪도록 하는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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